미국이 쿠바와 외교 관계를 복원하고 국경의 빗장을 열어 놨지만 쿠바 난민이 크게 늘어나는 뜻밖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미국에 입국한 쿠바인은 4만3159명에 이른다. 이는 전년도 밀입국자 2만4278명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1994년 쿠바에서 대규모 미국행 보트피플이 발생했던 때보다는 3배나 많다.
미국행 쿠바 난민이 급증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지난해 12월 미국과 쿠바가 관계 정상화 협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외교 관계 복원으로 쿠바인들은 적법한 절차로 미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쿠바인은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을 목적으로 일시 체류 대신 밀입국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밀입국을 부채질한 것은 1994년부터 유지해 온 미국의 ‘젖은 발, 마른 발’ 정책 폐기를 꼽을 수 있다. 이 정책은 쿠바를 탈출한 보트피플이 해상에서 발견되면 송환하지만, 미국 땅에 발만 디디면 영주권을 주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정책이 폐기될 것이란 입소문이 돌자 수많은 쿠바인이 밀입국을 택하는 것이다. 적법한 절차를 밟아 미국에 입국하는 것보다는 무작정 미국에 들어가 난민 자격으로 영주권을 받는 게 훨씬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쿠바 난민 대다수는 무비자 협정을 맺고 있는 에콰도르로 비행기를 타고 간 뒤 이곳에서부터 콜롬비아 파나마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멕시코를 거쳐 미국에 들어간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쿠바의 동맹국인 니카라과가 쿠바 이민자들을 통과시킬 수 없다며 국경을 폐쇄했다. 코스타리카도 자국에 불법으로 입국한 쿠바 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니카라과와 코스타리카 국경에는 11월 중순부터 7000명에 가까운 쿠바 난민들의 발이 꽁꽁 묶여 있다. 코스타리카와 파나마 국경에도 1000명에 가까운 난민이 머무르고 있다. 난민 중에는 임신부와 어린아이를 포함해 고혈압 등 만성 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있지만 이불도 없는 긴급 거처에서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섰다. 교황은 27일 쿠바 이민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줄 것을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에 촉구했다.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국경을 건너는 수많은 쿠바인들이 인신매매 희생자가 되고 있다”며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이 해결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교황은 내년 2월 멕시코를 방문해 난민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또 난민들의 주요 통로인 멕시코 북부 시우다드후아레스 국경지대에서 미사를 집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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