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양대 맹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3일(현지 시간)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두 나라의 극한 대립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아시아 주식시장이 출렁거렸으며 중동 정세도 요동치고 있다.
사우디의 아델 알주바이르 외교장관은 이날 국영TV 연설에서 “사우디에 주재하는 모든 이란 외교관은 48시간 내에 본국으로 떠나라”고 요구했다. 이란 주재 사우디 외교관들은 이란의 사우디 외교공관 공격 이후 전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외교 관계를 끊어버린 것은 사우디가 2일 시아파 유명 성직자를 포함해 47명을 집단 처형한 뒤 이란 시위대가 사우디의 외교공관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이어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신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위협하자 사우디는 이란과의 단교를 전격 선언했다. 수니-시아 종파 분쟁이 일촉즉발의 긴장으로 확산되자 4일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2월 인도분은 전자 거래에서 최대 3.5% 오른 38.32달러까지 치솟았다.
사우디가 단교 카드를 꺼내 든 것은 궁지에 몰린 사우디 정부의 위기 타개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사우디와 이란의 단교는 종파 간 대립 격화를 불러올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바레인과 수단도 사우디의 뒤를 이어 4일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한다고 발표했다.
AP통신은 사우디의 초강경 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80)을 꼽았다. 살만 국왕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부터 수니파 맹주로서 위상을 다지기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 왔다. 국내적으론 반대파에 대한 사형 집행이 급증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초래했다. 사우디는 지난해에만 150명 이상을 처형했는데 이는 전년의 두 배 수준이다.
그러나 건강이상설이 돌고 있는 살만 국왕은 현재 내우외환(內憂外患) 상태다. 아들인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제2 왕위 계승자 겸 국방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예멘 내전이 10개월째 수렁에 빠져 있다. 여기에 저유가로 오일 머니가 바닥을 드러내며 경제 위기는 악화일로에 놓여 있다. 지난해 사우디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5%인 3670억 리얄(약 114조 원)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여기에 지난해 이란과 서방의 핵협상 타결은 사우디에 발등의 불이다. 이란의 경제 제재가 완전히 풀리면 이란의 석유 수출량이 크게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사우디가 갖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절대적인 원유 증산·감산 능력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사우디는 이란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내 시아파 성직자 셰이크 니므르 알니므르의 처형을 강행했다. 이는 니므르가 시아파 거주지이자 걸프 연안 최대 원유 생산지인 동부 아와르 유전 지대의 분리 독립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오일 머니에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로선 니므르는 ‘돈줄’을 위협하는 존재인 셈이다. 사우디는 니므르의 처형을 통해 이란의 영향력이 동부 유전지대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 민주화의 싹도 자르겠다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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