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을 부르짖으며 멕시코 소도시의 시장에 당선된 여성이 취임 다음 날인 2일 자택에 침입한 괴한들의 총격에 사망하자 인터넷에는 핏빛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암살자의 나라 멕시코’를 조롱하는 글이 넘쳐났다.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지게 한 이 사건은 멕시코에서는 별반 새로운 뉴스거리가 아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지난 10년간 암살됐거나 암살 협박을 받은 시장만 100여 명. 상당수 중앙 정치인과 장관급 인사도 괴한의 습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2000년 이후 15년여 동안 피살된 언론인도 88명에 달한다. 지난해에만 8명이 희생됐다.
지옥도(地獄道)를 연상케 하는 상황은 주요 지표에서 한국을 앞서는 선진국 멕시코의 또 다른 얼굴이다. 멕시코는 중남미 최초로 1994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 1999년에는 주요 20개국(G20)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3위로 11위인 한국보다 두 단계 뒤질 뿐이다. ‘카리브 해의 보석’으로 불리는 국제적 신혼여행지 칸쿤을 품은 나라 멕시코가 잔혹한 범죄 국가라는 오명을 얻은 이유가 뭘까.
정치인 언론인… ‘사업 걸림돌’ 무차별 살상
모든 사건의 핵심에는 카르텔이라 불리는 마약 범죄 조직(갱단)이 있다.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무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마약 사업을 하면서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린다. 자신들과 손잡기를 거부하거나 사업을 방해하는 정치인과 언론인을 무차별로 제거한다. 2010년 이들에게 기자 2명을 잃은 한 언론사는 카르텔을 향해 “죽음을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이들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2012년 11월에는 카르텔과 전쟁을 치르던 서부 미초아칸 주 티키체오 시의 여성 시장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당시 36세)가 고속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총상은 없었지만 머리에 둔기로 강타당한 흔적이 있었다. 그는 2008년에는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총격을 받아 남편을 잃었다. 3개월 후에도 차량에 총알 30발이 날아드는 공격을 당하고 겨우 살아남았다.
카르텔에 납치된 실종자들을 찾는 시민단체 ‘사라진 사람들’을 이끌던 미겔 앙헬 히메네스도 지난해 8월 남부 게레로 주 아카풀코 시에서 암살됐다. 암살 직전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100여 명이 한꺼번에 묻힌 무덤을 비롯해 2008년부터 300여 명의 실종자를 찾아냈다”며 “범죄가 활개 치는 환경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주간지 프로세소의 사진기자 루벤 에스피노사가 자택에서 머리에 총격을 받고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베라크루스 주지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뒤 신변에 위협을 느껴 멕시코시티로 피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인권단체 ‘아티클19’에 따르면 베라크루스 주에서는 2010년 이후 언론인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교적 안전한 수도에서 일어난 언론인 암살 소식에 전국적으로 추모 시위가 일기도 했다.
멕시코 수사당국은 이달 초 일어난 시장 살해 사건도 ‘로스 로호스’라는 지역 카르텔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멕시코 중부 모렐로스 주 테믹스코에서 시장에 당선된 야당 출신 히셀라 모타(33)는 선거 과정에서 카르텔 소탕 필요성을 강조했다. 붙잡힌 용의자는 경찰에 “살해 대가로 마약 갱단에서 3만 달러를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모타의 어머니는 침입한 5, 6명의 괴한에게 “날 죽여라”라고 했지만 모타 시장은 “내가 히셀라 모타”라고 나서며 부모와 어린 조카 등 가족의 안전을 간절히 요구했다.
실패로 돌아간 ‘범죄와의 전쟁’
멕시코 정부는 2006∼2012년 카르텔을 상대로 대대적인 범죄와의 전쟁을 치렀다. 2006년 선거에서 72년 동안 카르텔과 공존하며 집권한 제도혁명당(PRI)을 꺾고 국민행동당(PAN)이 집권하면서 ‘핏빛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카르텔과 자경단, 군경이 매일같이 총격전을 벌였다. 미국의 정보 분석 회사인 ‘스트랫포’가 집계한 이 시기 사망자는 4만7500여 명. 압수한 무기와 마약은 각각 10만 정과 100억 달러어치나 된다. 정부는 희생자 90%가 카르텔 조직원이라고 주장했지만 민간인의 희생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2년 PRI가 재집권하면서 범죄 소탕 작전은 흐지부지됐다. 피비린내에 질린 국민들이 정의 대신 ‘더러운 안전’을 택한 것이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이인걸 영사는 “현재는 치안이 많이 안정됐다. 카르텔 간 경쟁이 심한 일부 지역을 제외한 관광지, 대도시 등은 안전한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도 멕시코 치안은 세계에서 바닥 수준이다. 2015년 초 미국 미디어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10곳’ 중 멕시코 아카풀코가 3위에 올랐다. 세계 최대 통계 사이트 넘베오(www.numbeo.com)가 발표한 ‘2015년 범죄율이 높은 국가’ 가운데 멕시코는 34위지만, 지역별 편차가 커 주별 도시별 범죄율만 따지면 상당수 지역이 20위권에 들어간다. 미국과 과테말라 접경지대는 치안이 특히 불안하다. 카르텔의 화력이 경찰보다 뛰어나 경찰들이 부임을 꺼리거나 부임해도 카르텔과 결탁해 무법천지로 전락한다.
경찰도 카르텔의 주요 표적이 된다. 2011년 3월 우범지역의 경찰서장에 자원해 ‘멕시코에서 가장 용감한 여성’이라 불리던 마리솔 바예스 가르시아(27)가 돌연 미국으로 망명했다. 훗날 그는 “카르텔들이 매일같이 가족과 아픈 아이를 죽이겠다고 협박해 밤마다 한숨도 못 잤다”고 밝혔다. 전임자는 2009년 납치돼 참수당했고 소속 경찰 17명 중 15명이 살해됐다.
미국과 정부, 무능과 가난이 카르텔 키워
멕시코는 왜 마약 천국이 됐을까. 러시아 브라질과 함께 세계 최대 마약 소비국 가운데 하나인 인접국 미국의 영향이 가장 크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마약의 90%가 멕시코에서 생산되거나 멕시코를 통해 유입된다. 멕시코 카르텔은 자체 제작한 잠수정과 전차 등 군사장비까지 동원하며 마약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AP통신은 최근 “멕시코 카르텔이 자국뿐 아니라 중남미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만큼 성장했다”고 전했다.
1980, 90년대 초반까지는 메데인 카르텔 등 콜롬비아와 볼리비아 카르텔이 미국에 마약을 주로 공급했다. 하지만 해상 단속이 강화되자 이들은 멕시코 카르텔을 끌어들여 육로를 개척했다. 1990년대 초반 메데인 카르텔의 보스 파블로 에스코바르 등이 차례로 수사당국에 붙잡히면서 콜롬비아 카르텔은 와해 수순을 밟았다. 이후 자체적으로 마약 생산 및 유통을 도맡게 된 멕시코 카르텔이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이다.
불평등이 심한 멕시코의 사회 경제적 상황도 카르텔 기승을 부추긴다. 2013년 기준 멕시코인의 평균 교육 연수는 중학교 2학년 수준인 8.6년에 불과하다. 100명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고등학교를 마치는 사람이 27명, 대학까지 졸업하는 경우는 13명에 그치고 있다. 문남권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교수는 “좌파 이데올로기가 강한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 멕시코도 의료 교육 분야의 공공성이 강하다. 대학까지 모두 의무교육이다. 하지만 생계유지가 힘든 가정이 많아 저소득층 아이들은 대부분 생활비를 번다”고 설명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두둑한 봉급과 안정된 수입을 보장하는 카르텔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장재혁 주멕시코 한국대사관 총영사는 “멕시코는 국가 전체의 경제 상황은 나쁘지 않지만 지역별, 개인별 빈부 격차가 심하다”며 “찌든 가난을 피하기 위해 카르텔에 가입하는 청년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정부의 무능과 부패도 범죄 세력을 키웠다. 2014년 9월 남서부 게레로 주의 라울 이시드로 부르고스 농촌사범학교 학생 43명이 한꺼번에 납치돼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동료 학생들이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지역 시장은 사건 당일 저녁에 있을 부인의 파티 연설이 방해받을까 봐 경찰에 시위를 막으라고 지시했고, 경찰은 진압 역할을 지역 카르텔에 맡겼다.
익명의 멕시코 교민은 “멕시코 경찰은 시 정부 관할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강력한 범죄 척결 의지를 보여도 관리가 힘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시장 피살이 유독 빈번한 것도 이런 행정 체계와 관계가 있다. 그는 “최근 멕시코에서는 경찰 행정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반대 의견이 거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지역 주민들은 부패한 지방정부보다 카르텔에 더 의지하기도 한다. 북서부 시날로아 주 지역 카르텔인 ‘엘 차포’의 우두머리 호아킨 구스만은 주민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유명하다. 구스만은 멕시코시티 외곽에 있는 연방교도소에 17개월 동안 갇혀 있다 지난해 7월 땅굴을 이용해 영화 같은 탈출에 성공했다. 카르텔 로스 세타스는 “왜 버스를 타고 힘들게 일하러 가나. 로스 세타스는 현역, 퇴역 군인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충분한 급여를 주겠다”는 구인 광고를 내기도 했다. 범죄에 빛바랜 경제 신흥국의 도약
미국과 멕시코 정부는 카르텔 척결을 위해 오랫동안 협력해 왔다. 하지만 저조한 성과 탓에 최근엔 이마저 시들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미 마약수사국(DEA)은 구스만이 탈옥하기 한 달 전에 첩보를 입수했으나 멕시코 경찰이 그와 유착돼 있을 것을 의심해 정보를 넘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남권 교수는 “미국이 지원한 인적 물적 자원으로 콜롬비아 등 마약 생산국들은 산악지대에 살충제를 뿌려 상당한 효과를 봤다. 하지만 넓은 유통망을 가진 멕시코에 대해서는 미국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미국이 마약 소비를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멕시코는 80년간 국영기업이 독점한 유전 개발권을 지난해 7월 처음으로 외국에 개방했다. 북미 지역 자동차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고 미국 유럽 일본 등 외국의 투자도 활발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불안한 치안과 부패로 빛이 바랬다”고 지적했다. :: 카르텔 ::
담합을 뜻하는 카르텔이라는 용어가 멕시코 마약 폭력 조직을 뜻하게 된 것은 과거 두 폭력 조직이 마약 유통 경로와 사업 방식 등을 담합해 운영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두 조직은 갈라섰지만 멕시코 마약 관련 범죄 조직은 여전히 카르텔이라 불리고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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