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8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 전체를 분쟁과 갈등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AP통신이 입수한 서한에 따르면 자리프 외무장관은 “이란은 이웃과의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다”며 “사우디가 극단주의자들을 지원하고 종파 간 증오를 부추길 것인지 아니면 선린(善隣)과 지역안정을 촉진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리프 외무장관은 사우디가 이란과 서방이 핵 합의안 협상 타결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좌절시키려 애쓴 점을 지적했다. 그는 “사우디가 2013년 11월 핵협상 잠정 타결 이후부터 모든 역량을 이를 무력화하는 데 집중했다”면서 “중동 전체를 분쟁과 갈등으로 몰고 가려는 징후가 보인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자리프 장관은 그간 있었던 예멘 민간인 폭격, 사우디 공항직원의 이란 청소년 성추행, 메카 성지순례 압사 사고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사우디가 핵 합의를 좌초시켜 중동의 긴장을 증폭하려 한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자리프 장관은 또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선출된 첫날부터 지역 안정을 촉진하고 불안정한 극단주의 폭력과 싸우기 위해 사우디와 대화와 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음을 알리는 신호를 공개적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자리프 장관은 이 서한을 반기문 총장뿐 아니라 유엔 회원국의 각 외무장관, 사우디가 주도하는 수니파 이슬람 국가기구인 이슬람협력기구 사무총장에게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란에서는 8일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전역에서 사우디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테헤란에서는 약 1000명의 시위대가 사우디 왕가인 ‘알사우드 가족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또한 일부 시위대는 사우디에 처형된 님르 알 님르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였으며, ‘미국에게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란 구호도 나왔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도 1500명이 운집한 가운데 이번 처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그동안 중동 문제에 좀처럼 개입하지 않았던 세계최대 이슬람 인구대국 인도네시아가 사우디와 이란 간의 종파분쟁 중재에 나섰다.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마르수디 외무장관을 특사 자격으로 이란과 사우디에 보낼 예정이라고 9일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특사를 보내는 것이 우리가 갈등 해결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잘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비(非) 중동국가이기 때문에 중동권의 첨예한 갈등에서 한발짝 떨어져 중재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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