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히잡’… 증오 부채질하는 트럼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유세장서 또 무슬림 비하 발언

8일 오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록힐의 체육관인 윈스럽 콜리시엄.

공화당 대선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유세를 시작하자 체육관을 가득 메운 지지자 2000여 명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트럼프는 전매특허인 무슬림 비하 발언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시리아 난민들이 이슬람국가(IS)와 연계되어 있다.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 트럼프 뒤에서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려고 쓰는 스카프)을 쓰고 조용히 서 있던 여성이 경호원에게 끌려나왔다. 청중은 일제히 그 여성을 봤고, 트럼프도 유세를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유세를 지켜보던 항공사 승무원인 무슬림 여성 로즈 하미드 씨(56)는 결국 유세장에서 쫓겨났다. 하미드 씨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우” 하며 하미드 씨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한 백인 남성은 하미드 씨를 막고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큰 소리를 질렀다. 또 다른 남성은 하미드 씨에게 “당신은 폭탄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지지자만 그에게 “끌려 나가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선거 캠프는 경호업체에 이날 유세장에서 시위가 발생할 경우 장내 정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경호원들은 히잡을 쓰고 있던 하미드 씨를 시위 용의자로 지목해 유세장에서 끌어냈다. 그의 옆에 있던 마티 로젠블러스 씨와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남성 3명도 자리를 떠야 했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유대인을 연상시키는 복장이었다. 트럼프는 하미드 씨가 쫓겨난 뒤 “우리에겐 (무슬림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가 있다”며 그가 쫓겨난 게 당연하다는 듯한 뉘앙스로 말했다.

하미드 씨는 유세장에서 나온 뒤 CNN 인터뷰에서 “사람이 누군가를 경멸하면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증오심에 불타 못된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무슬림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유세장을 찾았다”고 덧붙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내 무슬림 사회가 들끓었다. 미국 내 최대 무슬림 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는 트럼프의 사과를 요구했다. 니하드 아와드 CAIR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고 “유세장에서 무슬림 여성을 아무 이유 없이 몰아낸 장면은 종교의 다양성을 가치 있게 여기는 많은 사람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트럼프#무슬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