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유일호 부총리 “정부 빚 증가속도 빨라… 확장재정 기조서 탄력 운용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8일 03시 00분


[유일호 부총리 첫 단독인터뷰]

“AIIB 한국역할 확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립총회에서 진리췬 AIIB 초대 총재와 악수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AIIB 한국역할 확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립총회에서 진리췬 AIIB 초대 총재와 악수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일부에서 날 보고 ‘순둥이’라고 하지만 경제 운영에 관한 내 나름의 철학과 의지를 갖고 있다. 전쟁을 치르는 각오로 나서겠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오후 9시경(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 왕징(望京) 지역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부총리 지명 직후 “관리형이다”, “경제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비판이 이어진 것과 관련해 자신은 “결코 순둥이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은 것이다.

그는 세간의 화제가 됐던 취임사를 언급하며 앞으로 ‘경제 사령탑’의 본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내비쳤다. 유 부총리는 13일 취임식에서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백병전(白兵戰)도 불사해야 한다”, “징비(懲毖·잘못과 비리를 경계하여 삼간다)의 자세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며 전투 용어를 쏟아 냈다. 평소 온화한 성격으로 알려진 유 부총리로선 이례적인 발언이다. 이 같은 용어들을 쓴 이유를 묻자 그는 “매일매일이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순둥이가 아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전쟁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부총리는 취임 직후 평택항 방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회동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16일에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립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 AIIB 참여국이 57개국에 이르지만 이날 참석한 외부 인사들 중에 가장 고위급인 인사는 바로 유 부총리였다. 격식을 중시하는 중국은 유 부총리에 대해 최고 수준의 의전을 제공했다. AIIB 창립총회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바로 오른쪽에 앉아 시 주석에 이어 두 번째로 축사를 했다. 유 부총리는 중국으로부터 최고의 대접을 받은 것에 대해 “루쉰(魯迅)의 말을 인용한 것이 점수를 딴 것 같다”며 웃었다. 유 부총리는 이날 축사에서 “중국 대문호 루쉰은 ‘고향’이라는 소설에서 ‘애초에 길은 없었다. 많은 사람이 걸으면 그것이 길이 된다’고 말했다. 2년 전 AIIB가 걷기 시작한 좁은 오솔길이 많은 사람이 같이 걸으면서 넓은 길로 변해 가고 있다”고 말해 중국 측의 환호를 받았다.

그는 “AIIB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만큼 운영 측면에서도 주도적으로 나서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AIIB를 통해 북한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선 “기재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며 각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며 유보적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6월 말 AIIB 협정문 서명식 당시 최경환 전 부총리가 “북한이 투자를 필요로 하고 투자할 여건만 되면 한국은 AIIB가 북한을 지원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것과는 온도 차가 있었다. 최근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경색된 남북 관계를 반영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유 부총리에게 순둥이와 함께 항상 따라다니는 말 중 하나가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 정책)를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유 부총리는 “과연 누가 경제부총리가 된들 대단히 새로운 이론과 정책 수단을 갖고 새롭게 일을 하겠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꾼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리즘도 그 사람들이 대통령이나 총리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은 박근혜 정부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확장적 재정 정책의 지속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재정적자에 대한 부분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이전 경제팀과는 다른 경제 운용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유 부총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확장적 재정 정책은 모든 나라에서 추진한 것이었고, 특히 한국은 그런 정책을 펼칠 ‘룸(room·여지)’이 있었다”면서도 “지금은 정부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탄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빠르게 업무를 파악하고 있다”며 곧 자신만의 경제 구상과 정책들의 각론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베이징=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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