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뉴요커 트럼프’ 비난했다 혼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9일 03시 00분


“뉴요커는 돈-미디어에 집중” 발언… 뉴욕 시민들 비난 쏟아져
궁지 몰린 크루즈 결국 사과

미국 민주당의 대표적 텃밭인 ‘블루(민주당 상징색) 스테이트’ 뉴욕이 공화당 경선 후보들이 촉발한 ‘뉴욕적 가치(New York Values)’ 논쟁으로 들끓고 있다.

14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노스찰스턴에서 열린 공화당 경선 후보 TV토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뉴요커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를 공격하면서 뉴욕적 가치를 폄훼하는 발언을 한 게 발단이 됐다. 크루즈 의원은 자신의 출생지(캐나다)를 문제 삼는 트럼프에 반격하면서 “트럼프는 뉴욕적 가치를 (몸에) 지닌 인물”이라며 “(뉴욕적 가치는) 진보적이고, 낙태와 동성결혼을 찬성하고, 돈과 미디어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주의자들 중엔 맨해튼 출신이 많지 않다”고도 했다. 보수적인 공화당 대선후보로 뉴요커인 트럼프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뉴요커는 돈과 인기(미디어)만 좇는 속물’이란 의미도 설파한 것이라고 뉴욕 언론은 해석했다.

이에 트럼프는 TV토론에서 “크루즈의 발언은 많은 뉴요커를 모욕한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트럼프는 “(2001년) 9·11테러 때 수천 명이 죽었다. 그 다음 날부터 복구와 구호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때) 난 이 세상 어디에도 뉴욕처럼 아름답고 인간적인 곳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뉴요커)는 수많은 죽음을 봤고, 죽음의 냄새를 느끼면서도 싸우고 또 싸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큰 박수가 터졌고, 크루즈 의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토론이 끝나자 뉴욕의 정치인과 지역 언론은 한목소리로 크루즈 의원을 맹비난했다. 트럼프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뉴욕 언론들도 “이번만은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뉴요커들은 뉴욕 대표 라디오방송인 WNYC 등에 전화를 걸어 “크루즈 의원이 뭘 안다고 뉴욕의 가치를 그렇게 쉽게 재단하나. 뉴욕의 가치는 곧 아메리칸 드림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국의 가치”라고 주장했다.

뉴욕 주 상원의원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주자와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 등 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크루즈 의원의 뉴욕적 가치 발언은 역겹다. 당장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대중지 뉴욕데일리뉴스는 15일자 1면에 자유의 여신상이 크루즈 의원에게 손가락 욕을 하는 장면(사진)을 싣고 “뉴욕적 가치를 모르겠거든 (출생지인) 캐나다로 꺼져라” “월스트리트에서 정치 자금을 구걸하면서 뉴욕을 욕하는, 천하의 사기꾼이자 위선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궁지에 몰린 크루즈 의원은 17일 CNN방송 등에 잇따라 출연해 “나를 공격하는 민주당 정치인들이 아니라, 뉴욕의 주민들에겐 사과한다”면서도 “뉴욕의 좌파 매체들이 나를 부당하게 공격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크루즈#뉴요커#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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