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 뒤 그동안 이 이슈를 미국 사회에 알리고 한국의 주장을 설득시키는 데 앞장서 온 한인 풀뿌리 시민단체들의 충격이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미동포들의 힘으로 2007년 미국 연방하원을 통과시킨 위안부결의안에 비추면 합의 내용은 턱없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동포들에게 합의 내용과 불가피성을 알리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주미공관 등을 통해 “역사적 타결”이라고 홍보하는 데 주력했다. 심지어 ‘합의에 반대하는 재미동포는 불온세력’인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합의 후 일주일이 지난 이달 초 뉴욕지역의 한 동포단체 신년하례식에 참석한 뉴욕총영사관의 고위 당국자는 미주지역 내 한인들의 반대시위를 놓고 “합의의 (긍정적) 내용을 외면하고 오도하려는 움직임은 대한민국 기본 질서를 혼란시키려는 사람들이 중심이 돼서 하는 것 아닌가 싶다”며 “합의에 반대하는 (재미동포들의) 시위에 대해선 그 내용이 뭔지, 어떤 분들이 참석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뉴욕 현지 동포신문과 인터넷방송에 보도되면서 동포사회 내부의 반발을 샀다. 위안부 문제를 미국 사회에 알리는 노력을 해 온 한 풀뿌리단체 관계자는 “위안부 합의 내용은 2007년 미 하원 위안부결의안에 크게 못 미친다”며 “이에 항의하는 시위나 집회를 하는 사람 모두를 마치 ‘반(反)정부 세력’인 것처럼 몰아간 건 지나치지 않으냐”고 말했다.
2007년 위안부결의안은 △성노예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인정 △일본 총리의 공식 성명을 통한 사과 △미래 세대에 대한 교육 등을 담았다. 재미동포들이 똘똘 뭉쳐 미 의회를 압박한 이 결의안으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위안부(comfort women)’를 ‘성노예(sex slave)’라고 규정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번 문제가 한국 정부에 대한 성토나 비판으로 귀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도 “합의문에 ‘이 문제를 기억하고 교육하겠다’는 문구만 있었어도 환영 논평을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재미동포 일각에선 “100%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번 합의로 한일관계 회복이란 외교적 성과가 재미동포 사회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만큼 위안부 이슈는 이제 그만 접는 것이 어떠냐”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2007년 미 하원의 위안부결의안 채택 때 힘을 합쳤던 한인 풀뿌리단체들이 위안부 합의 이후 되레 사분오열(四分五裂)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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