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들이 본 美 대선 ‘빅4’ /후보별 강-약점 분석]
[美 대선 레이스 본격 스타트]
2013년 미국 국무부 청사를 떠난 힐러리 클린턴(69). 그는 지금도 어느 유세장을 가든, 어떤 토론회에서든 “마담 세크리터리(Madam Secretary·국무장관님)”로 불리며 외교 현안을 이야기한다. “나는 준비돼 있다”며 내일이라도 백악관에 출근할 수 있다고 한다. 늘 말쑥한 정장 차림이다.
미 동북부의 시골 버몬트 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75)는 유세에 나서면 5분도 지나지 않아 입술에 침이 흥건해진다. 고향인 뉴욕 브루클린의 억센 사투리로 “월스트리트가 지배하는 정치를 뒤엎어야 한다”고 목청껏 외친다.
인종과 종교 차별을 서슴지 않는 ‘막말 파이터’ 도널드 트럼프(70)는 늘 찡그린 얼굴이다. 유세장에서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욕설을 섞어가며 오른손 검지를 하늘로 추켜올린다. “버락 오바마가 망친 미국에 대한 (백인 주류층의) 불만을 담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화당 내 보수 모임인 ‘티파티’의 총아 테드 크루즈(46)는 얼음장 같다. 트럼프가 “당신은 캐나다 출신이라 안 된다”고 쏘아붙여도 “트럼프로는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보수층의 우려를 송곳처럼 파고든다.
‘세계 대통령’을 뽑는 미 대선이 다음 달 1일 아이오와 주 코커스(당원대회)를 시작으로 9개월여간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현재 판세는 각 당의 경선 구도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혼전이다. 27일 아이오와 주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은 45%, 샌더스는 49%였다. 26일 퀴니피액대 조사에서 트럼프는 31%, 크루즈는 29%였다.
이번 대선은 전례 없이 ‘워싱턴 아웃사이더’(샌더스, 트럼프)의 강세가 이어지는 데다 각 주자들이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다. 누가 되더라도 미 역사상 최초다. 최초의 여성(클린턴), 무소속(샌더스), 정치권 밖 사업가(트럼프), 쿠바계(크루즈)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 지지층도 어느 때보다 양극화하는 추세다.
미 대선 현장을 취재 중인 동아일보 미국 특파원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후보별 판세와 전망을 SWOT(Strength Weakness Opportunity Threat·강점 약점 기회 위기) 기법으로 분석했다. 《 25일 오후 미국 아이오와 주 디모인 드레이크대 회의장. 미 대선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앞두고 마지막 민주당 대선 주자 토론회인 ‘타운홀 미팅’이 열렸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 주)은 모든 게 달랐다. 클린턴은 빨간색 정장을 차려입었다. 샌더스는 트레이드마크인 구겨진 양복과 버튼다운 셔츠에 넥타이를 맸다. 버튼다운 셔츠는 워싱턴 주류 정치인들이 공식 석상에선 금기시하는 캐주얼 셔츠다. 유권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둘은 옷차림만큼이나 정반대의 정책과 이슈로 호소했다. 》
●‘국정 경험’의 힐러리 클린턴
1947년생. 예일대 로스쿨 졸업. 변호사. 대통령 부인(1993∼2001년), 뉴욕 주 상원의원(2001∼2009년), 국무장관(2009∼2013년) Strength
“영악할 정도로 똑똑하고(wicked smart) 모든 정책을 다 안다. 그런데 그런 강점이 약점이 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클린턴에 대해 24일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기자가 워싱턴에서 접한 클린턴에 대한 분석 중 가장 정확한 분석이다. 그의 강점은 대선 주자 중 국정 경험이 가장 풍부한 ‘준비된 후보’라는 이미지다. 대통령 부인부터 상원의원, 국무장관까지 하나도 하기 어려운 자리를 최근 20년간 두루 다 거쳤다. 이슬람국가(IS)의 연쇄 테러 이후 외교안보 전문가로서의 이미지를 앞세워 다시 대세론에 불을 지폈다. 25일 타운홀 미팅에서 한 중년 백인 남성이 말했다. “지난해 10월 하원의 벵가지 사태(2012년 리비아 벵가지에서 벌어진 미 외교관에 대한 테러) 청문회에서 11시간 동안 공화당 의원들을 녹다운시키는 것을 보고 반했다.” ‘준비된 후보론’ 전략이 먹힌 것이다.
Weakness
하지만 이 같은 강점이 되레 발목을 잡고 있다. 외교 현안은 물론 백악관 안주인 시절 주도한 의료 개혁 등 너무도 많은 이슈의 홍수에 빠지면서 정작 자신만의 스토리를 잃어버렸다. 이는 정치적 식상함이란 치명적 단점으로 확산되고 있다. 오바마는 클린턴의 선거 운동에 대해 “시(詩)라기보다 산문에 가깝다”고 했다.
클린턴이 지난해 4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내건 슬로건은 ‘중산층 회복’이다. 하지만 “부자들을 위한 정치를 뒤집을 것”이라고 주창한 샌더스의 등장으로 이 구호는 쑥 들어갔다. 그 대신 국정 경험을 내세웠지만 아직 클린턴만의 이미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국무장관 시절 개인 e메일로 국가 기밀을 다뤘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Opportunity
2월 1일 아이오와 코커스를 앞둔 클린턴 진영은 비상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와 흐름이 불리하다. 퀴니피액대가 27일 아이오와 주 민주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선택에 가장 중요한 이슈가 뭐냐’는 질문에 ‘경제와 일자리’라고 답한 비율이 38%로 가장 높았다. 샌더스가 다걸기를 하는 분야다. 클린턴의 장기인 외교 분야는 8%밖에 안 된다.
그러나 클린턴이 조직력을 동원해 아이오와에서 박빙이라도 승리를 거둔다면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폭스뉴스가 25일 공개한 아이오와 주 여론조사를 보면 클린턴 지지자들 중 79%는 마음을 굳혔다고 답했다. 네바다 주(2월 20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2월 27일) 경선은 클린턴이 압도적인 우세다.
Threat
아이오와 주에서 석패라도 한다면 곧장 빨간불이다. 이어 열리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샌더스가 인근 주(버몬트) 출신이라 오래전부터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여 왔다. 반전 카드도 딱히 없다. 클린턴은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도 이곳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한 뒤 내리막을 달렸다.
●‘정치 혁명’의 버니 샌더스
1941년생. 시카고대 정치학과. 연방 하원의원(버몬트 주·1991∼2007년), 연방 상원의원(버몬트 주·2007년∼현재) Strength
“월스트리트 은행을 해체하겠다”는 샌더스는 클린턴과 달리 한 가지에만 집중한다. “정치혁명을 할 준비가 됐느냐”라는 거다. “더 이상 (부자 정치는) 안 된다(Enough is Enough)” 등의 보조 구호도 ‘정치 혁명’이라는 메인 테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유세 과정을 거치면서 ‘세상을 바꿀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대단히 매력적이고 희소성 있는 강점을 만들어 냈다. 그의 유세장에 가 보면 상당수가 미국 정치에 비판적인 젊은이들이다.
지난해 9월 버지니아 주 매너서스 유세장에서 만난 20대 여대생 엘리슨 키턴 씨는 “망가진 미국을 고치겠다는 샌더스에게 희망을 건다”며 친구들과 록콘서트장에 온 듯 유세를 즐겼다. 검은 양복을 입은 보안 요원이 곳곳에 배치돼 엄숙한 클래식 공연 같은 클린턴 유세장과는 대조적이다.
Weakness
하지만 열정만으로 대선 후보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구 63만 명의 동북부 시골인 버몬트 주의 상원의원이 과연 3억2300만 명의 미국을 이끌어 갈 국정 운영 능력이 있느냐는 의구심은 최대 약점이다.
그는 미국을 어떻게 뜯어고치겠다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7일 아이오와에서 이어진 릴레이 유세에서도 부유세 신설과 월스트리트 은행에 대한 초강경 규제만 반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직이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호사는 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샌더스는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이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샌더스는 오바마 ‘후보’의 후계자이고, 클린턴은 오바마 ‘대통령’의 후계자”라며 “냉철한 현실 감각이 없는 이상주의는 미덕이 아니다”라고 했다.
Opportunity
아이오와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칠 수만 있다면 뉴햄프셔의 우세를 발판으로 이후 경선전을 끌고 갈 수 있다. 샌더스는 스스로 2016년판 오바마가 되려 한다. 26일 아이오와 유세 때는 이런 말을 했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는 늘 비판을 받았다. 급진적이고 위험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재선까지 했다. 내가 바로 그런 상황이다.” Threat
아이오와에서 무너진다면 샌더스 돌풍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수 있다.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선 클린턴이 여전히 앞서고 있다. ABC방송의 27일 조사에서 미 전역의 민주당 지지자 중 55%는 클린턴을 지지했고 샌더스는 36%에 그쳤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클린턴의 안정과 샌더스의 열정 가운데 무엇을 고를지 선택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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