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비판 앵커에 재갈 물리는 日방송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3일 03시 00분


日 TBS-NHK 등 지상파 3사, 메인뉴스-시사프로 담당 대거 교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비판적인 발언을 해 온 일본 지상파 보도 프로그램의 간판 앵커들이 올봄 줄줄이 교체된다고 아사히신문이 2일 보도했다. 방송사들은 여러 이유를 내놓고 있지만 유독 정권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앵커들만 일제히 퇴장하는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민방 TBS에서는 메인 뉴스인 ‘뉴스23’을 2013년부터 맡아 온 기시이 시게타다(岸井成格·71) 앵커가 3월 말 하차한다. 마이니치신문 기자 출신으로 아베 정권이 특정비밀보호법과 안보법 등 논란이 많은 법률을 강행처리할 때마다 가차 없이 비판해 보수 우익 진영에는 ‘공적’이나 다름없었다.

지난해 11월에는 그를 지목한 ‘방송법 준수를 요구하는 시청자회’ 명의의 전면 의견 광고가 산케이, 요미우리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방송에서 “미디어 입장에서도 안보 법안 폐기를 위해 계속 목소리를 높여 가야 한다”고 말한 부분이 방송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TV아사히 메인 뉴스 ‘보도스테이션’을 12년간 진행해 온 후루타치 이치로(古館伊知郞·61) 앵커도 3월 말 프로그램을 떠난다. 지난해 평균 시청률이 13.2%로 호조였으나 본인이 연말 회견에서 “만 12년으로 매듭짓고 싶다”고 말했다.

스포츠 앵커에서 보도스테이션 앵커로 발탁된 후루타치 앵커는 시청자 입장에 서서 비분강개하는 진행 스타일로 유명하다. 지난해 9월 안보 법안이 참의원특별위원회에서 가결되자 “저는 강행 체결이었다고 봅니다”라고 말하는 등 평소 쓴소리를 많이 했다. 인터넷에는 그의 발언 하나하나를 두고 비판하는 우익들의 글이 넘쳐난다.

공영 NHK는 심층 시사 프로그램 ‘클로즈업 현대’를 1993년부터 진행해 온 프리랜서 앵커 구니야 히로코(國谷裕子·58)와의 계약을 3월 말로 끝내기로 했다. NHK 관계자는 “제작 현장에서는 구니야가 계속 맡아 주기를 강력히 원했으나 내용을 일신하기 위해 간부들이 강판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구니야 앵커는 2014년 7월 아베 내각이 집단자위권 관련 헌법 해석 변경을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한 직후 아베 총리의 복심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을 게스트로 불러 ‘일본이 전쟁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었다. 격노한 스가 장관에게 NHK 회장이 사죄한 사실이 일본 주간지에 보도되기도 했다.

아베 정권과 자민당은 최근 이 세 프로그램에 대해 민원을 쏟아 냈다. 2014년 ‘뉴스23’에 생방송 출연했던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시민 목소리가 담긴 거리 인터뷰에 대해 “내용이 편중됐다”며 발끈했다.

지난해 4월에는 ‘클로즈업 현대’와 ‘보도스테이션’ 내용을 둘러싸고 자민당이 방송국 간부들을 불러 조사하기도 했다.

스나가와 히로요시(砂川浩慶) 릿쿄(立敎)대 교수는 “시시비비를 제대로 지적하는 앵커가 없으면 TV는 질식해 버린다”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아베 신조#일본#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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