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 “美금리인상 속도 늦출수도” 日증시는 급락, 16개월새 최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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毒이 된 마이너스 금리… 日, 아시아 금융혼란 부채질
패닉 빠진 아베노믹스

《 10일 일본 닛케이평균주가가 전날에 이어 장중 4% 이상 하락하는 등 약세를 보인 끝에 2.31% 하락한 15,713.39엔에 마감됐다. 일본 증시가 15,000엔 선까지 밀린 건 2014년 10월 30일(15,658.30엔) 이후 약 1년 4개월 만이다. 한편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이날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미국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밝혔다. 》

9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 쇼핑 일번지인 긴자 중앙로의 한 은행.

정기예금 금리 인하를 알리는 안내문 앞에 자전거를 세우던 음식점 종업원 마쓰오 에미(松尾繪美·33) 씨는 ‘마이너스 금리’ 얘기를 꺼내자 손사래부터 쳤다.

“일본은 20년 넘게 디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어요. 소득이 늘지 않는 이상 금리를 찔끔 내린다고 소비가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나부터 돈을 빌려 집을 사거나 더 쓰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중국과 산유국 등의 경기 불안으로 일본 국민의 ‘디플레 마인드’가 심해지자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지난달 29일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민간은행 예금에 0.1%의 수수료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소비와 투자를 늘리기 위해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마쓰오 씨처럼 기자가 만난 일본 사람들은 금리가 떨어진다고 돈을 더 쓸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 “일은이 뭐라 하든 예금통장은 지킬 것”

오사카(大阪) 시의 자영업자 나카노 요코(中野葉子·53) 씨는 “일본은행이 뭐라고 말해도 예금통장을 지킬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주변에 경제 버블 당시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사람이 적지 않다”며 “오랜 디플레의 영향으로 주택과 주식을 투자 대상으로 보는 일본인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주부인 다케다 지하루(武田千春·53) 씨도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주변에서 실감한다는 사람은 찾을 수 없다”며 “남편 월급이 오른 것도 아니고 부동산 시세가 올랐다 해도 나하곤 관계없는 일이라 소비를 늘리거나 투자를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경기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란 답변은 24%에 그쳤다. 두 배에 가까운 4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일본은행 출신인 다케우치 아쓰시(竹內淳) 일본경제연구센터 주임연구원은 “성장 전망이 약화된 상황에서 금리 인하가 투자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수익을 낸 기업들도 해외에 투자하지 국내에선 돈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시중은행들은 요즘 매일 금리를 내리고 있다. 소니은행은 보통예금에 연 0.001% 이자를 준다. 1000만 원을 맡길 경우 1년 후 100원을 이자로 주는 것이다. 수익성이 악화된 은행은 수수료 인상을 검토하고, 자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은 보험사는 보험료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연기금도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 살림살이에 안 좋은 뉴스만 쌓이고 있는 것이다.

○ “일은(日銀)의 오산” vs “끝까지 간다”

마이너스 금리로 주가가 오르고 엔화 가치가 안정될 것이란 기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주가는 찔끔 올랐다가 연일 폭락하고 있고 엔화도 강세로 돌아섰다. 무제한 돈을 풀어 주가를 올리고 엔화 약세를 통해 경기를 부추기는 아베노믹스의 원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디플레이션 지속 우려도 커지고 있어 아베노믹스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채 장기 금리까지 마이너스로 떨어지며 금융시장 혼란이 극에 달하자 주요 조간신문은 10일 일제히 ‘일은의 오산’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마이니치신문은 사설에서 “일은의 마이너스 금리가 오히려 시장에 불안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은 총재는 “금융 완화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4일 중의원)라며 마이너스 금리를 옹호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10일 중의원에서 “구로다 총재를 신뢰한다”며 그에게 힘을 실어 줬다.

다이와증권의 나가이 야스토시(永井靖敏)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구로다 총재는 마이너스 금리 폭을 확대하며 최후까지 금융 완화 정책을 밀고 나갈 가능성이 크다”며 “연간 물가상승률 2% 목표를 위해 무리하게 금리를 낮추다 결국 새로운 버블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 한미 금융 당국에도 불똥

일본 증시 폭락으로 국내 금융시장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0일 오후 금융경제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 금융시장이 연휴 전보다 더 불안정한 모습”이라며 “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정부와 협력해 안정화 조치를 취하는 등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0일(현지 시간)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 출석에 앞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중국과 산유국 경제의 부진에 일본 경제에도 이상 신호가 켜진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그는 “미국 국내 요인과 외국 요인이 모두 미 경제에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정임수·김성규 기자
#옐런#아베노믹스#닛케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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