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16년판 글로벌 경제 위기는 메가톤급 악재들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2008년 금융위기(미국)와 2011년 재정위기(유럽)가 특정 지역에서 악재가 불거져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줬다면 지금은 지구촌 경제 어느 구석도 튼튼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 요소들이 널리 퍼져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가 무엇을 디딤돌 삼아 수렁에서 빠져나올지 좀처럼 방향성을 잡지 못하는 분위기다.
각국 정부의 위기 대응 카드가 거의 소진됐다는 점도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일본, 유럽 등 세계 주요국이 채택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경기를 살려내기보다는 오히려 더 큰 후폭풍을 몰고 오면서 시장 불안만 키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7년여의 ‘돈 풀기’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고 이제 부작용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됐다.
이 같은 금융시장의 혼란상은 저유가 쇼크에서 비롯된 실물경기의 침체와 악순환의 고리를 이루며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현재의 위기 국면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회복은커녕 공포만 키우는 경기부양책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엔화 약세 유도와 제로 금리, 양적완화에 이어 지난달 29일 ‘극약 처방’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시중은행이 일본은행에 돈을 맡길 때 이자를 주는 대신 수수료를 물림으로써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돈의 물꼬를 소비와 투자로 돌리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당국의 목표와 달리 마이너스 금리 도입 2주일 만에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7% 이상 급등해 15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닛케이평균주가도 15% 폭락해 2014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15,000엔이 붕괴됐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 경제가 살아날 거라 믿는 대신 그만큼 현재의 경제 상황이 나쁘다는 신호로 받아들인 글로벌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엔화를 대거 사들인 탓이다.
유럽에서는 독일 도이체방크 등 대형 은행들의 파산설까지 불거지면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수년간의 마이너스 금리로 은행의 수익 기반이 급격히 악화되고 자본 건전성이 훼손되면서 유럽은행이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올 정도다. 올 들어 도이체방크 주가가 35% 이상 급락하는 등 유럽 주요 은행들의 주가는 재정위기가 최고조였던 2011∼2012년과 비슷한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이런 모습은 세계 경제의 유일한 ‘보루’로 인식되는 미국마저 흔들리게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로 금리 시대를 끝내며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던 미국은 추가 금리 인상은커녕 오히려 다시 금리를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에 빠져 있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지난해 12월까지 3개월 연속 감소했고 경기 선행지표인 미국 공급관리협회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기준치를 밑돌면서 경기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11일(현지 시간) “마이너스 금리의 적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혀 이 같은 시장의 우려를 키웠다.
세계 각국의 금리인하 경쟁은 실물경기를 회복시키지는 못한 채 ‘환율 전쟁’을 격화시키고 그동안 견고했던 글로벌 공조 체제만 흔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말 미국이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선 뒤 세계 각국의 행보가 어긋나면서 마이너스 금리 같은 정책들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세계 각국의 정책 공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선진국에 도미노 타격 주는 신흥국
미국의 출구 전략으로 촉발된 신흥국들의 경제 위기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양상이다.
25년 만에 ‘바오치(保七·연 7% 성장률 유지) 시대’를 마감한 중국 경제는 세계 경제 3차 위기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라는 분석까지 제기됐다. 중국 증시는 올 들어서만 20% 이상 추락했고, 위안화 가치의 하락 속도도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
이런 위안화 약세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외환당국이 달러화를 시장에 풀면서 지난달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3조2000억 달러까지 쪼그라들었다. 2014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중국 외환보유액은 지난해에만 5100억 달러 이상 급감해 연간 기준으로 사상 처음 감소세를 보였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외환보유액 3조 달러’가 무너지면 위안화 가치가 재차 하락하면서 중국 내 외국자본의 유출 속도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유가 급락세가 거세지면서 산유국 등 자원부국의 부도 위험 역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큰 브라질 경제는 지난해 3.8%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헤알화 가치도 한 해 동안 50% 가까이 폭락했다. 브라질은 최악의 경제난에 대통령 탄핵론까지 불거지면서 정치적 혼란도 가중되는 양상이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재정 악화로 몸살을 앓는 베네수엘라 역시 국가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아제르바이잔은 지난달 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국제유가 급락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에너지 관련 기업들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의 원유·가스 관련 기업 70곳 이상이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김권식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중남미 국가의 금융·경제 불안이 신흥국 전반의 경제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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