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5년 동안 일본 사회는 원전 가동 여부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부딪쳤다.
사고 직후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는 원자력발전 비중을 30%에서 50%까지 높인다는 기존 계획을 백지화하고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 54기를 모두 중단한다는 ‘원전 제로’ 정책을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정부 부처 간 협의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은 발표였지만 하마터면 나라가 무너질 뻔한 경험을 한 일본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해 그대로 시행됐다.
하지만 이듬해 전력난 발생 우려가 제기되면서 ‘원전 제로’는 곧바로 공수표가 됐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2012년 6월 후쿠이(福井) 현의 오이 원전 3, 4호기를 재가동했다. ‘원전 제로’ 상태에 들어간 지 불과 한 달 만에 원전이 다시 가동되자 분노한 국민 20만 명은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일본 정부는 2013년 9월 오이 원전을 다시 정지시켰다.
2012년 말 취임한 아베 신조 총리는 원전을 ‘국가의 중요 에너지원’으로 규정하고 “안전성이 확인된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나아가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20∼22%를 원전으로 충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원전을 가동하지 않으면 원유를 수입해 화력발전을 해야 하는데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원전 재가동을 하는 지자체에 교부금을 늘리겠다”며 ‘당근’을 제시했다.
‘후쿠시마의 악몽’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갔다. 원전 제로 결정을 내렸던 간 총리도 시위에 참가해 “아베 정권은 나라를 망칠 정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중견 언론인은 아베 총리의 원전 가동 강행 배경에 대해 “일본인들은 ‘다테마에(建前·겉모습)’와 ‘혼네(本音·속마음)’의 차이가 있는데 아베 총리가 이를 잘 간파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하면 겉으로는 과반수가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위기감이 약해진 데다 원전 가동 중단 이후 20∼30%가량 오른 전기요금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정권은 결국 지난해 8월 가고시마(鹿兒島) 현 사쓰마센다이(薩摩川內) 시에 있는 센다이 원전 1호기를 재가동시키면서 23개월 동안 이어졌던 원전 제로를 끝냈다. 두 달 뒤 센다이 원전 2호기에 이어 지난달에는 후쿠이 현 다카하마 원전 3호기도 재가동했다. 아베 정권은 앞으로 최대 30기를 재가동할 계획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54기)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이 다시 가동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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