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東京)의 생활용품점인 시마추 홈스 가사이점의 개인금고 판매 코너엔 이런 문구가 걸려 있다. 은행 예금금리가 떨어지면 “차라리 금고에 돈을 넣어두겠다”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홍보를 한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최근 일주일 판매량이 전년 동기 보다 60%나 늘었다. 점포 측은 “가장 인기가 있는 7만9800엔(약 86만 원)짜리 대형금고는 이미 품절돼 다음달 말에나 살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일본은행은 16일부터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민간은행 예금에 0.1% 수수료를 받고 있다. 돈을 맡기면 이자를 준다는 경제 상식과 배치되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당초 기대했던 경기회복 효과 대신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메이저 보험사인 후코쿠(富國)생명보험은 전날 “영업사원이 판매하는 일시불 종신보험 상품 판매를 이달 말부터 중단 한다”고 발표했다. 돈을 받아봐야 굴릴 곳이 없다 보니 아예 손을 든 것이다. 일시불 종신보험은 가입할 때 돈을 내고 죽거나 장애를 입으면 보상받는 상품으로 퇴직금 같은 목돈을 쥔 이들에게 인기였다. 다이이치(第一)생보는 16일 일부 일시불 종신보험의 판매를 중단했고 다이요(太陽)생보는 보험료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은 자고 일어나면 예금금리를 낮추고 있다. 일본 최대 은행인 우체국은행은 9일 예금 금리를 연 0.03%에서 0.02%로 낮춘 데 이어 추가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리소나은행은 18일부터 금리를 연 0.02%에서 0.001%로 낮췄다. 1000만 원을 맡기면 1년 후에 이자로 100원을 주는 것이다. 엔화예금과 외화예금의 금리 차이가 20배까지 벌어지면서 외화예금으로 돈이 흐르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은행에 파리가 날리는 반면 백화점 적립회원 가입자 수는 급증세다. 일본백화점의 경우 회원이 1년간 매달 5000~5만 엔을 적립하면 쇼핑할 때 한 달 치 적립금을 덤으로 얹어준다. 연리로 따지면 8% 이상인 경우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매달 3만 엔(약 32만 원)이나 5만 엔을 적립하는 상품은 50~10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백화점은 적립금으로 이자를 챙기지 못하는 마니어스 금리 시대지만 고객 유치를 위해 사실상 세일과 같은 효과를 노리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매달 일정액을 적립해 해외여행을 가는 여행사 상품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예금을 포기하고 소비에 나서는 이들을 잡기 위한 마케팅도 한창이다. 푸조 시트로엥 재팬은 20일부터 ‘금리를 제로로, 가족을 하나로’라는 문구를 내세워 한 달 동안 자동차 대출 금리를 0%로 내리는 행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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