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2000년대 각종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양호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고성장 덕분이었다. 국내 수출기업들이 ‘세계의 시장’으로 불리는 중국을 적극 공략한 결과 국내 생산과 투자도 덩달아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중국이 ‘중속성장’으로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하면서 대중(對中) 수출 의존도가 컸던 한국 경제도 방향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중국이 중속성장으로 속도를 늦춘 것은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국정운영 방향으로 내세운,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인 ‘신창타이(新常態·New Normal)’에 맞게 경제운영을 바꾸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으로는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6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중국의 성장률이 1.0%포인트 하락하면 한국 성장률은 최대 0.6%포인트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중국의 수요 감소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국의 수요 감소보다 5배 더 크다. 한국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의 경기 둔화→한국 수출 하락→국내 생산 및 투자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부품 등 한국의 주요 중국 수출품목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중국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지면서 수요 자체가 적어진 데다 현지 업체들의 생산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탓이다.
반도체와 평판디스플레이 등 지금까지 중국 시장에서 선전해 온 품목들도 당장 올해부터 시장 축소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신창타이 정책이 자국 내 생산 및 소비 촉진을 추구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수출전선에 악영향은 불가피하다.
중국의 경기둔화보다 더 우려되는 대목은 중국이 산업 고도화를 통한 질적 성장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천명한 부분이다. 이를 위해선 중국 내부의 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중국이 자체 기술력을 키워나갈 경우 중국에 부품소재를 많이 수출하는 한국 기업의 수출 기회는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자국의 소비재 기업을 키워 내수시장을 육성하겠다는 중국의 전략은 한국 기업에 위기이면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핵심부품과 첨단 고부가가치 제품 및 최종재 수출에 역점을 두고 중국 내수용 수입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며 “중국 내 서비스산업 비중이 커지면서 한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의료, 문화 산업도 유망 수출 품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중국의 변화에 단기부양과 구조조정이란 ‘투 트랙’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추가 부양책으로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수출환경 변화에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달 중 청년·여성 일자리 대책과 소비재 수출 활성화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소기업 취업 청년들의 학자금 대출 상환을 일정 기간 유예하거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두 배 이상 늘리는 정책들을 검토 중이다. 또 화장품, 식료품, 의약품, 패션의류, 생활유아용품 등을 5대 소비재 품목으로 선정하고 무역금융 확대 등 수출 지원책도 내놓을 계획이다.
정부는 지지부진한 업종별 구조조정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시장에선 4월 총선이 끝나는 대로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