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지 여사 운전기사’ 미얀마 대통령 유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1일 03시 00분


54년만의 문민대통령 후보
수지, 옥스퍼드 동문 ‘틴 초’ 지명… 국정운영 ‘수렴청정’ 의지 밝혀
WSJ “군부와 관계 시험대 올라”

1962년 쿠데타로 시작된 군부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54년 만에 평화적 정권 교체가 진행되고 있는 미얀마의 차기 대통령에 ‘민주화의 꽃’ 아웅산 수지 여사의 옛 운전기사 출신 측근이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은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10일 하원에 틴 초(70)를 대통령 후보로 등록했다고 보도했다. 틴 초는 1990년대 중반부터 수지 여사의 운전기사, 수행비서를 담당했던 최측근으로 지금은 수지 여사 어머니의 이름을 딴 자선재단에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미얀마의 대통령은 상하원 의원들의 간접선거로 뽑힌다. 상원과 하원, 군부가 각각 후보 1명을 내고 상하원이 합동으로 투표해서 대통령과 2명의 부통령을 선출한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NLD가 상하원 모두 과반을 확보해 틴 초의 대통령 당선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부통령 자리는 NLD가 상원에 추천한 소수민족인 친족(族) 출신의 헨리 벤 티 요우(58)와 군부가 후보로 지목한 사이 마우크 캄 현 부통령(66)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상하원 합동 투표는 다음 주로 전망된다. 새 대통령은 내각을 꾸리고 다음 달 1일 취임한다.

틴 초는 현재 의원 신분도 아니고 NLD에 입당한 지도 두 달밖에 안 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1990년 하원 의원에 당선됐던 유명 시인 민 투 운이고 장인은 NLD 창당 주역 중 하나인 우 르윈으로 정치인 가문 출신이다. 아내도 현재 NLD 소속으로 하원 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다. 틴 초도 양곤경제대(1962년)를 거쳐 수지 여사의 모교인 영국 옥스퍼드대(1972년)를 졸업한 유학파 지식인이다. ‘달라 반’이라는 필명으로 문단에서 활동했으며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70, 80년대에는 외교부, 산업부에서 근무했다. 성격은 조용하고 온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지 여사가 자신의 운전기사였던 틴 초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것은 실질적인 국정 운영을 자신이 할 것이라는 신호로 보인다. 수지 여사는 지난해 11월 총선 직후 “내가 실질적 대통령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겠다”며 권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미얀마 정치분석가로 유명한 리처드 호시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수지 여사의 지침만 충실하게 따르면 족하다”고 말했다.

영국인과 결혼한 수지 여사는 현행 헌법에 따라 대통령에 선출될 수 없다. 군부 정권은 2008년 헌법을 고쳐 직계 가족에 외국인이 포함되면 대선 출마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미얀마타임스는 최근 NLD 고위 당직자의 말을 인용해 수지 여사가 외교장관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수지 여사는 외교장관 등 각료 11명의 국가안전보장회의 구성원으로 들어간 뒤 군부와 개헌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군부와 합의해 대리 대통령을 중도에 사퇴시키고 의회 지명, 의원 간선제로 대통령에 오른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수지 여사가 실제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자리에 오를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의원 75%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NLD는 현재 상하원 모두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을 확보하고 있다. 헌법에 따라 상하원의 25%를 장악한 군부는 ‘수지 대통령’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지 여사가 최근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을 만나 협상에 나섰지만 군부는 헌법 개정에 호의적이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미얀마의 대통령 선출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군부와 새로 의회를 장악한 수지 여사의 민감한 관계를 시험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아웅산 수지#미얀마#대통령#틴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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