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전승훈]누가 프랑스 교육이 평등하다고 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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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파리 특파원
전승훈 파리 특파원
지난해 10월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일반고 전성시대’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조 교육감은 취임 직후 일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을 취소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교육부가 제동을 걸었고 조 교육감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는 “일반고를 부흥시킬 방안을 내놓기에 앞서 자사고부터 없애려 한 것은 성급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대부분 ‘진보 교육감’이 평준화 교육, 대학 서열화 폐지를 거론할 때는 프랑스가 모범 사례로 거론된다. 조 교육감도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프랑스의 공립학교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두 아이를 키워 보니 프랑스가 ‘평준화 교육’을 지향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해마다 이맘때면 프랑스 교육부는 바칼로레아(대학수학능력시험) 합격률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 전국 고교의 서열 순위를 발표한다. 지난달 16일에도 2015년 전국 4300개 고등학교(공사립 일반고, 직업고 포함)를 각 도별로 1등부터 꼴찌까지 매긴 리스트를 내놨다. 올해 순위에서 프랑스 최고 명문 고교인 ‘루이 르그랑’과 ‘앙리 4세’가 공동 2위에 올랐고, 파리 15구의 사립고교 ‘자닌 마뉘엘’이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에서는 사립고교는 물론 공립고교도 평준화가 아니다. 학군마다 있는 1, 2개의 명문고가 우수 학생을 선발한다. ‘루이 르그랑’은 프랑스 전역에서 최고 학생을 선발한다. 대부분의 고교에 우열반이 편성돼 있고 매년 성적 미달 학생의 10%는 유급된다.

등록금이 없는 파리의 국공립 대학은 1부터 13까지 숫자가 매겨져 있다. 바칼로레아만 합격하면 집 근처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 대학은 서열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일반 대학 위에 ‘그랑제콜(Grandes ´Ecoles)’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하나 더 있다. 전국 상위 5%의 수재들만 입학할 수 있는 명문대다.

에콜폴리테크니크(이공계), 국립행정학교(ENA), 고등상업학교(HEC·상경계) 등의 그랑제콜에 입학하려면 고교 졸업 후에도 보통 2년간의 준비반(프레파)을 거쳐야 한다. 프레파 학생들은 밤낮없이 공부하느라 빛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두더지’로 불린다. 1시간에 100유로(약 14만 원)짜리 고액 과외도 받는다. 프랑스에 사교육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누구든 돈이 없어도 대학까지 공짜로 공부할 수 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을 통해 키워내는 소수 엘리트 교육도 함께 존재한다. 그랑제콜 졸업생은 초봉이 일반 대학 졸업생의 2, 3배나 되고 프랑스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프랑스 학부모들이 명문고나 그랑제콜에 대해 질투하거나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뛰어난 인재라면 특혜를 줄 테니 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데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사고다.

지난해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선고유예를 받은 조 교육감이 최근 ‘일반고 전성시대’ 2라운드에 시동을 걸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24일 발표한 고교체계개편 보고서에서 “자사고뿐 아니라 외국어고, 국제고까지 일반고에 통합시키겠다”고 밝혔다. 일반고를 명문고로 키울 방안도 없이 잘나가는 학교부터 끌어내리고 보자는 그의 전략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

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파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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