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소비에트 연방도 수 만 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과 미사일 위협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은 북한 주민의 자각이라는 것을 이 책이 보여줍니다.”
14일 오후 프랑스 파리 센강 주변에 있는 ‘퐁네프 카페’. 북한 주민의 고통과 인권 문제를 다룬 재북 작가의 ‘고발(La D¤nonciation)’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출간한 피에르 리굴로 프랑스 사회역사연구소장(72)의 출판기념회에 프랑스 언론인과 출판계 관계자 30여 명이 모였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북한에도 솔제니친 같은 작가가 있다”는 톱기사로 이 책을 소개했고, 프랑스 앵포(Info)·RFI 등 라디오 방송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고발’은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작가 반디(가명)가 쓴 것으로 알려진 단편 소설집이다. 작가의 사촌 동생이 탈북 해 원고를 한국으로 반입했고 2014년에 책이 출간됐다.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이번에 프랑스어 번역본이 나왔다.
리굴로 소장은 ‘고발’에 대해 “구소련 시절 작가였던 알렉산드르 지노비에프(1922~2006)가 특유의 블랙 유머로 현실을 비판했던 작품 ‘밝은 미래(L’Avenir radieux)‘를 연상케 한다 ”고 평가했다.
“북한에서 선전선동의 상징인 천리마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전력 부족으로 갑자기 정전이 되면서 김일성 수령을 위해 조성된 제단을 비추던 조명이 끊어지자 당혹해하는 간부의 모습을 그린 장면은 유머러스한 필체를 통해 더욱 슬프고 어두운 현실을 깊이 느끼게 해줍니다.” 리굴로 소장은 ’68혁명‘ 당시엔 마오이즘 신봉자였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스탈린주의에 신물을 느끼면서 30년간 공산주의와 전체주의 체제의 역사를 연구해오며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97년 ’공산주의 흑서‘의 북한편을 저술했고, 2000년에는 탈북인 강철환 씨와 북한 요덕 정치범 수용소의 일상을 담은 ’평양의 수족관‘을 프랑스어로 냈다.
그는 북한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로 북한 주민들이 더 고통을 겪게 됐다는 우려에 대해 “북한 정권은 원래 국민의 삶과 행복에 관심이 없었으며, 제재가 있으나 없으나 주민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또 “서구 기자들은 ’왜 북한 내부에서는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지지 않느냐‘라고 순진한 질문을 하는데 북한 정치범 수용소나 처형 시설 등 삼엄한 감시 체제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리굴로 소장은 1990년대 말부터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된 ’프랑스 지성인 성명‘을 여러 차례 주도했고 유엔이 주최하는 북한 인권대회에도 꾸준히 참여해왔다. 그는 “프랑스 지성인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앙가주망(현실참여)의 전통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정작 한국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좌 우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11월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와 같은 국가적 위협 앞에서 좌우파가 없이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미사일 개발 위협에도 좌 우파가 이념 대립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권 문제를 외치는데 좌우파가 따로 있겠습니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