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 ‘보수의 거두’ 앤터닌 스캘리아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새 연방 대법관에 메릭 갈런드 연방항소법원장(63)을 지명하면서 미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갈런드 후보자가 상원 인준을 거쳐 임명될 경우 동성결혼과 낙태 문제 등 주요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최종 법적 판단을 내리는 대법관의 이념 지형이 50여 년 만에 진보 우위로 기울기 때문이다.
갈런드 후보자 지명에 대해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상원 인준을 감안해 (다수당인) 공화당이 거부할 수 없는 인물이면서 (보수로 기울어 있는) 대법관의 이념적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인사를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확정적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갈런드 후보자는 초당적 지지와 존경을 받아온 인물로 상원은 인준을 진행해 헌법상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런드 후보자는 중도 진보 성향으로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에서도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1997년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를 워싱턴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지명했을 때 찬성 76, 반대 23으로 무난히 임명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또 다른 대법관 후보로 검토했던 인도계 스리 스리니바산 워싱턴 연방항소법원 판사(49) 카드를 버리고 60대의 백인 갈런드를 택한 것도 상원 인준 절차를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역대 대통령들이 종신직인 연방 대법관 자리에 코드가 맞는 인물을 오래도록 남겨 두기 위해 젊은 인사를 지명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갈런드가 임명되면 대법관의 이념 지형은 보수 우위(보수 5, 진보 4)에서 진보 우위(진보 5, 보수 4)로 바뀌게 된다. 뉴욕타임스가 연방 대법관들의 이념 성향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진보 성향의 대법관 5명 중 가운데에 위치한다.
8년 만의 정권 교체에 도전하는 공화당은 지난달 13일 스캘리아 대법관이 사망하자 “내년에 새로 뽑히는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갈런드 지명 후 성명을 내고 “상원은 새 대법관 후보자를 인준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상원은 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까지 인준 절차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세론’이 현실이 되면서 공화당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공화당의 유력 대선 경선 후보인 트럼프는 본선 경쟁력에선 민주당의 클린턴 전 장관에게 밀린다. 올 11월 대선에서 클린턴이 당선되면 갈런드보다 훨씬 왼쪽에 있는 인사가 지명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일에 전체 정원의 3분의 1이 교체되는 상원 선거를 앞둔 의원들로서는 갈런드라는 무난한 인물을 무조건 외면했다가 헌법의 의무를 방기했다는 정치적 역풍을 맞을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공화당이 상원 인준을 거부할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이 휴회하는 동안 임명을 강행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원의 인준을 받지 않은 대법관은 임기가 다음 의회 회기까지로 제한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900년 이후 선거가 열리는 해에 모두 8명의 연방 대법관이 지명됐으며 이 중 6명이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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