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 한반도에서 상륙훈련 바람이 불었다. 한미 연합군이 12일 포항에서 1만7000여 명이 참가하는 사상 최대의 상륙훈련을 진행하고 일주일 후 이번엔 김정은이 북한군의 상륙 및 상륙 저지훈련을 직접 지휘했다. 고작 경탱크 6대를 해안에 상륙시킨 별 볼 일 없는 상륙훈련을 벌여놓고 북한은 어이없게도 서울해방작전을 운운했다. 그걸 보면서 황소와 싸우겠다고 몸에 바람을 채우다 뻥 터져버렸다는 이솝 우화의 개구리가 생각났다.
그런데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남쪽의 상륙훈련과 참수작전은 특히 기분 나쁠 것 같다. 김정은이 태어난 강원도 원산, 그곳에서도 그의 고향집이 있는 해변이 하필이면 한반도에서 손꼽히는 상륙작전의 최적지이다. 전쟁이 벌어지고 상륙작전이 진행되면 김정은은 고향집부터 뺏길 판이다.
김정은이 원산 출신임은 이젠 북한 사람들도 다 안다. 원산과 북쪽 문천 사이에 상륙하기 딱 맞춤인 긴 해변이 있는데, 바로 여기에 김정은이 태어난 ‘602초대소(특각)’가 있다. 이곳에 상륙하면 잘 닦인 평양∼원산 고속도로를 타고 내륙으로 신속하게 진격해 강원도 주둔 몇 개 군단을 일거에 포위할 수 있다. 그래서 6·25전쟁 때에도 원산상륙작전이 단행됐다.
김정은은 해마다 꽤 많은 시간을 고향집에서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전 해군 전대(戰隊·함대의 북한식 표현)장들에게 팬티만 입혀 10km 수영을 시킨 곳도 원산 특각 앞바다이고, 군단장들을 불러다 사격경기를 시키며 군기를 잡은 곳도 특각 앞 백사장이다.
참수작전이란 단어가 한국 언론에 오르내린 뒤로 김정은은 원산 특각에 가기가 조금은 불안해질 법도 하다. 특수부대에 해변에 있는 별장은 치고 빠지기 딱 좋은 목표다. 게다가 호화생활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과 쿠데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변에 군부대도 거의 없다. 참수작전이 실행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할지라도 김정은은 이왕이면 특각에 최대한 몰래 왔다 가는 데 신경을 쓸 것이다.
현재 특각 지상 경계는 602연락소가, 해상 경계는 1022연락소가 담당한다. 대남 및 대일 공작 담당 기관인 연락소는 최정예 전투요원들을 갖고 있지만, 정규군 상륙 저지 능력은 거의 없다. 최정예 전투요원들이라고 해봐야 요즘은 김정은의 800만 달러(약 93억 원)짜리 영국산 ‘프린세스95MY’ 요트를 관리하거나 특각 내부를 훔쳐보는 사람을 잡는 등의 가병 노릇만 할 뿐이다.
야산으로 절묘하게 둘러막힌 특각 내부를 외부에서 볼 수 있는 위치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송도원야영소 숙소 제1동과 식당뿐이다. 하지만 건너다 볼 수 있을 만한 창문은 판자로 죄다 막아놓았다. 판자 틈으로 보려 하면 어느새 호각을 빽빽 불어대며 경비병이 나타난다. 맞은편에 쌍안경으로 쉬지 않고 감시하는 감시병들이 있는 것이다.
바다에 나가면 특각이 한눈에 보인다. 하지만 대략 4km 이내 거리로 배가 접근할 수도 없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몇 년 전 한 군부대 소속 어선 선장이 바다에서 특각 방향으로 사진을 찍었다가 갑자기 나타난 쾌속정에 연행됐다. 찍은 목적을 대라며 사흘 동안 초주검이 될 정도로 매를 맞았는데, 다행히 군 소속인 데다 ‘빽’이 좋아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민간인 같으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을 거라고 수군거렸다.
아이러니한 일은 김정은 집권 이후 특각이 상륙에 더 매력적인 장소로 변했다는 것이다. 특각과 평양∼원산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8km의 직선도로가 새로 닦였고 특각 바로 뒤에는 비행장까지 건설됐다. 김정은이 평양과 고향집을 차와 비행기로 더 편하게 오가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상륙군에게 장악되면 진격로와 공군기지로 정말 요긴하게 활용 가능하다. 인근 원산항과 갈마비행장은 덤이다.
원산 민심도 김정은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평양 다음으로 관심을 쏟는 도시가 원산이다. 그 과도한 관심이 역으로 독이 되고 있다. 주민들을 잘살게 하는 데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뭘 건설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집권 초기 마식령 스키장을 건설한다고 주민을 내몰더니 요즘엔 도시 건물과 외향을 현대적으로 하라고 들볶는다. 덕분에 원산 야경은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다. 빌딩마다 빨갛고 파란 조명 장치를 잘 해놓아서 전기 공급이 잘되는 명절 때 바다에서 보면 남쪽 동해안 어느 항구보다 야경이 멋있다. 오죽했으면 오랜만에 원산항에 들어오던 북한 어선이 “남조선에 잘못 왔다”고 정신없이 도망간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황홀한 불빛 아래서 원산 사람들은 “김정은이 하필이면 왜 여기서 태어났냐”고 푸념한다. 한미 연합군이 정말 상륙한다면 누구보다 이를 반길 사람이 바로 원산 주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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