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활기찬 공장지대로 ‘리틀 맨체스터’라 불리던 도시. 하지만 지금은 ‘테러범의 소굴’로 눈총받는 곳. 유럽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의 수도로 불리는 벨기에 브뤼셀 근교 몰렌베이크이다.
23일 정오(현지 시간) 몰렌베이크 시청 앞 녹색광장을 찾았다. 종탑에서 슬픈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광장에 모인 1000여 명의 시민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이날 몰렌베이크를 포함해 벨기에 국민들은 전날 발생한 브뤼셀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1분간 추모 묵념을 올렸다. 추도식에는 히잡과 터번을 두른 아랍계 주민들이 많이 보였다. 인구 10만 명의 몰렌베이크는 무슬림 인구가 3분의 1이 넘는다.
몰렌베이크는 ‘자생적 테러리즘의 고향’ ‘이슬람국가(IS) 전사 양성소’ ‘테러의 허브’로 불린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 테러에 이어 이번 브뤼셀 테러에서도 이곳 출신들이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 발생 후부터는 장갑차와 군용 트럭이 광장 주변에 배치됐다.
“우리 아이도 브뤼셀 지하철에서 폭탄테러가 난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 몰렌베이크 사람들도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두려워하고 있다.” 주민 이카즈반 씨는 ‘테러범 양성소’라는 오명이 억울하다고 했다. 대학생 빌랄 벤제마 씨(21)는 18일 파리 테러 주범인 살라 압데슬람이 이곳에서 붙잡히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테러범이 잡혔으니 안심해도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나흘 뒤 브뤼셀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히잡을 쓴 주민 미리암 씨(32·여)는 “압데슬람이 우리 동네에 은신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놀랐다”고 했다.
몰렌베이크는 브뤼셀의 구도심에서 불과 2.6km,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신시가지에서 5km 떨어져 있다. 승용차로 10분 거리다.
그러나 카페와 바가 화려한 불빛을 뽐내는 운하를 건너 몰렌베이크의 골목길로 들어선 순간 마치 북아프리카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야채가게와 정육점엔 아랍어로 된 간판이 즐비했고, 찻집 주변에선 청년들이 웅성거리며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기자가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하면 대부분 손사래를 쳤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40년간 이곳에 살았다는 자말 씨(62)는 “일부 일탈이 있다고 해서 테러범의 소굴은 아니다. 법을 지키는 평범한 무슬림으로서 불명예스러운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몰렌베이크 인구는 2000년에는 2만4000명이었다. 지금은 아랍계 이주민이 몰려오면서 10만 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일자리는 그만큼 늘지 않아 실업률이 30%가 넘는다. 청년실업률은 50%다. 벨기에는 서유럽에서 인구 대비 지하디스트 배출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시리아 내전에 참가한 벨기에 출신 지하디스트 130명 중 85명이 몰렌베이크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 프랑스어권과 북부 네덜란드어권으로 나뉜 벨기에의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행정과 정치권 분열도 테러범 확산을 방치하는 요인이다. 얀 얌본 내무장관은 미국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브뤼셀은 인구가 120만 명인데도 경찰 관할 구역이 6개, 지방자치단체가 19개로 쪼개져 있어 정보 수집과 집행에 애를 먹는다. 인구 800만 명인 뉴욕의 경찰 관할구역이 1개로 통합돼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고 말했다.
벨기에의 테러 대응 능력은 브뤼셀 자살폭탄 테러범 중 한 명이 지난해 IS에 가담하려다 터키 당국에 체포돼 강제 추방당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다시 도마에 올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3일 앙카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브뤼셀 공항에서 자폭한 테러범 이브라힘 엘 바크라위(29)가 지난해 6월 터키에서 강제 추방된 사실을 공개했다. 바크라위가 IS에 합류하기 위해 시리아로 들어가려 한 것으로 파악하고 벨기에 정부에 체포 사실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외국인 테러 전사’라고 알려줬는데도 벨기에 당국은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를 풀어줬다”고 주장했다.
쿤 헤인스 벨기에 법무장관은 벨기에 공영방송 VRT에서 “그때는 그의 테러 의혹에 대해 알지 못했다. 가석방 중인 일반 범죄자였을 뿐이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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