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4시 반에 일어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날마다 업무시간(오전 8시∼오후 7시)을 넘겨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다. 기상시간이 역대 교황보다 한두 시간 빠른 만큼 점심을 먹은 뒤 30분∼1시간 단잠을 즐긴다. 에너지 충전을 위한 고향(아르헨티나)에서부터의 습관이다.
▷폭염을 피해 ‘시에스타’라 부르는 낮잠을 즐기는 것은 지중해 연안과 남미 국가의 오랜 관습이다. 스페인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기업과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는다. 이런 느린 삶의 방식에 변화가 닥칠 것 같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대행이 ‘시에스타 폐지와 근무시간 2시간 단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2시간 넘게 점심과 낮잠을 즐기고 오후 8시 퇴근하는 관행을 없애고 ‘오후 6시 퇴근’을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2013년 의회 위원회는 “점심시간 단축, 정확한 시간 엄수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시에스타 폐지가 삶의 질 향상, 출산율 제고, 이혼율 감소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진단했다.
▷2008년 유럽 경제위기의 진원지였던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 포함된 스페인. 이제는 노동개혁과 구조조정에 힘입어 경제는 회복세로 거의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유럽 평균(1.7%)의 2배에 가까운 경제성장률(3.2%)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시에스타 폐지를 언급한 배경엔 정치의 불확실성이 있다. 작년 12월 총선에서 기득권 세력의 부패와 무능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30년 만에 국민당과 사회당의 양당 구도를 무너뜨리고 4당 체제를 선택했다.
▷그러나 연정 협상 난항으로 새 정부 구성에 실패해 정정이 다시 불안해졌다. 스페인 중앙은행은 “작년과 비교해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있다”며 “가장 큰 위협은 정치 불안정”이라고 지적했다. 6월 재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총리대행이 ‘시에스타 대신 2시간 빠른 퇴근’을 언급한 것은 표심을 얻으려는 선거 전략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표 몰이에 골몰하는 우리 정치권도 정치를 경제의 발목을 잡는 무기로 이용한다. 스페인 정치와 판박이처럼 닮았다는 생각에 그저 씁쓸할 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