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밤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를 포함해 도시 곳곳의 대형 스크린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화면에서는 브라질 하원 표결 상황을 생중계하는 방송이 나왔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69)에 대한 탄핵안에 찬성표가 추가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영국 가디언은 “브라질 국기를 든 사람들이 만세를 외치고 춤을 췄다. 마치 축구 응원을 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한 배경에는 좌파 정권의 부패에 대한 실망감과 극심한 경제난이 있다. 브라질 검찰은 2014년 3월 국영 에너지 기업 페트로브라스가 집권 노동자당(PT)에 뇌물을 건넨 정황을 잡고 수사에 착수했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노동자당을 만들어 대권을 거머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71)도 연루돼 큰 실망감을 안겼다.
경제의 끝없는 추락도 민심을 돌아서게 했다. 호세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2010년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7.5%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경기침체 속에 사회복지 비용이 늘어나 재정 상황이 나빠졌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10.7%로 2002년(12.5%)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급기야 올 2월 룰라 전 대통령 때 시작해 호세프 대통령까지 10년 넘게 이어져 온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사업 ‘보사 파밀리아’, 빈곤층에게 식량을 무상 공급하는 ‘포미 제로’ 등의 예산을 축소한다고 발표하자 민심은 급격히 악화됐다. 뉴욕타임스(NYT)는 “(호세프 정권이) 정치 스캔들과 경제 침체, (좌파 정부의) 환상이 깨지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호세프 이후’도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권력 승계 1순위인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과 승계 2순위인 에두아르두 쿠냐 하원의장도 페트로브라스 스캔들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NYT는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후 일부는 폭죽을 터뜨리며 자축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오늘 투표의 승자는 없다’며 허탈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탄핵 정국이 숨 가쁘게 돌아가면서 넉 달도 채 남지 않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8월 5∼21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13일 “브라질 정치 상황이 올림픽에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호세프 대통령은 21일 그리스에서 열리는 성화 채화(採火) 행사에 불참하기로 했다.
브라질 좌파 정권마저 흔들리면서 1988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집권 이후 남미 곳곳에 들어섰던 좌파 정권들의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 좌파 물결)’는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페루, 브라질 등에서 좌파 정권이 우파에 정권을 내주거나 기세가 꺾이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멕시코 외교장관을 지낸 호르헤 카스타녜다 뉴욕대 교수는 최근 NYT 기고문에서 “2012년까지 남미 국가들은 석유와 농산물 수출이 호황을 보인 덕에 복지투자를 늘렸지만 최근 경제가 나빠져 복지예산을 줄이는 과정에서 국민의 불만이 높아졌다”며 “좌파 정치권의 고질적인 부패도 국민을 실망시켰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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