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0회를 맞은 퓰리처상의 최고 영예는 동남아시아 노예 어부의 실태를 고발해 섬에 갇혀 있던 2000여 명에게 자유를 선물한 AP통신 여기자 4명이 차지했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언론대학원) 퓰리처상선정위원회는 18일(현지 시간) 마사 멘도자, 로빈 맥다월, 에스더 투산, 마지 메이슨 AP 기자의 탐사보도 기사를 대상 격인 공공서비스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퓰리처상 21개 부문 가운데 공공서비스 부문 수상자에게만 금메달이 수여된다. 나머지 20개 부문 수상자에겐 상금 1만 달러(약 1150만 원)씩 주어진다. AP로서는 52번째 퓰리처상이다. 멘도자 기자는 2000년에도 6·25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주민 학살 폭로 보도로 이 상을 받았다.
AP탐사보도팀은 2014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약 3000km 떨어진 벤지나 섬을 찾아가 감금된 노예 어부들을 발견해 인터뷰한 것을 시작으로 1년 이상 동남아 어업 현장을 추적했다. 그 결과 노예 노동 과정에서 수많은 선원이 죽거나 불구가 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강제로 고기잡이를 하다가 숨진 사람이 60명이 넘고,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묘지 이름조차 가명으로 썼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캐슬린 캐럴 AP 편집국장은 “노예 어부들을 감시하는 세력은 무장 마피아 조직이었다. 여기자들은 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4일 동안 작은 트럭 짐칸에 숨어 지낸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AP탐사보도팀은 지난해 3월 ‘여러분이 시장에서 구입한 물고기는 노예가 낚아 올린 것’이란 내용의 첫 기사를 시작으로 ‘노예노동 해산물’이 미국 내 월마트와 레드랍스터 등으로 유통되는 과정을 생생히 고발했다. 이들은 즉각 보도할 경우 노예 어부들이 위험해질 것을 우려해 관련 당국에 정보를 제공한 뒤 피해자들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기사 출고를 미뤘다. AP는 퓰리처상 선정위원회에 제출한 공적 설명서에서 “AP 보도 덕분에 결과적으로 2000명이 넘는 노예 어부들이 오늘날 자유의 몸이 됐다. 그들을 감금했던 업주 10여 명은 감옥에 갔고, 이런 식의 노예 비즈니스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밝혔다.
기사가 나간 후 많은 독자가 “‘노예 새우’는 절대 먹지 않겠다”고 했고, 유엔과 유럽연합(EU) 등도 진상 조사에 나섰다. 맥다월 기자는 수상 소감에서 “기획 단계부터 노예 해산물과 그것이 올라가는 미국 가정의 식탁을 어떻게 연결지을지 생각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요구해야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속보 부문은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의 총격 사건을 보도한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사진속보부문은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지는 난민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은 톰슨로이터와 뉴욕타임스가 공동 수상했다. 뉴욕타임스는 전쟁으로 처참해진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인권을 다룬 기사로 국제보도 부문상도 받았다. 탬파베이타임스는 플로리다 주 정부가 후원하는 정신병원이 예산 삭감으로 위기에 처한 실태를 고발해 탐사보도상을, 플로리다 주 파이넬러스카운티 인종분리 학교 정책의 부작용을 보도해 지역보도상을 수상했다. 경찰 공권력에 의한 살인 문제를 다룬 워싱턴포스트는 전국보도부문상을 받았다.
퓰리처상 수상작을 발표한 마이크 프라이드 선정위원회 사무국장은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언론이 늘 독립적일 수는 없지만 많은 이슈와 현안을 ‘독립적으로’ 취재해 보도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언론에 대한 불신이나 비난도 많다는 걸 알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기자가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있다. 이것이 퓰리처상선정위원회가 언론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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