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러시아가 중국 편을 들기 시작했다. 중국의 남중국해 해상패권 도전에 맞서기 위해 미국이 동맹국인 일본과 호주를 개입시킨 데 이어 중국이 러시아를 끌어들임으로써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주요국이 대거 개입한 ‘국제 분쟁’의 장으로 비화됐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1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중국·러시아·인도 3국 외교장관 회의에서 남중국해 분쟁을 국제 문제화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가 20일 보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분쟁 해결을 위해 관련 당사국들이 직접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자세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중-러 양국이 국제재판소의 중재 결정을 남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영유권 분쟁 해법과 관련해 러시아가 중국 편을 든 것이다.
라브로프 장관의 발언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한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을 앞두고 나온 것이다. 필리핀 정부가 PCA에 중국을 상대로 제기한 남중국해 분쟁 조정신청은 5월 말이나 6월 초 판결이 나온다.
중국은 이해당사국 간의 직접 협상과 해결을 주장하며 “판결이 나와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들은 필리핀을 지지하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에 러시아를 우군으로 끌어들인 것은 PCA의 판결을 앞두고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1일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들이 ‘남중국해 현상(status quo) 변경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앞서 유럽연합은 6일 PCA 결정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G7 정상들은 다음 달 일본에 모여 중국을 견제하는 ‘남중국해 성명’을 낼 방침이다.
휴고 스와이어 영국 외교부 국무장관(차관)은 18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영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한 PCA의 판결 결과를 지지하며 PCA 결정에 구속력이 갖춰져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미국과 필리핀 편을 들었다. 중국은 그동안 영국에 대해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하면 쌍무 무역의 이익을 해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러시아는 남중국해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 굳이 아시아 국가들과 맞설 이유가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대국인 중국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태도를 바꿨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기업인으로부터 러시아가 병합한 크림 반도 공항 운영권 문제로 PCA 소송을 당해 PCA 판결을 무력화하려는 중국과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리싱(李星) 베이징사범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에서 홀로 동떨어져 있었는데 러시아가 중국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서로의 핵심 이익을 챙겨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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