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남성이 지배해온 ‘미국 화폐 모델’ 세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소외됐던 흑인과 여성이 약진하고 소수인종 탄압 전력이 있는 기존 모델은 화폐 뒷면으로 밀려난다.
미국 재무부는 20일 20달러 지폐 앞면 모델을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7대)에서 흑인인권 여성운동가 해리엇 터브먼(1822~1913)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노예 소유주였던 잭슨 전 대통령의 얼굴은 백악관 그림과 함께 20달러 지폐 뒷면에 들어간다. 노예 출신인 터브먼은 노예농장에서 탈출한 뒤 남부의 다른 노예들을 북부로 탈출시키는 일을 도왔다. 그는 ‘흑인들의 모세’로 불린다. 터브먼은 남북전쟁에도 참전했고, 전후에도 여성과 흑인 인권운동을 계속 했다. 흑인이 미국 화폐 모델로 등장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여성 모델은 1891~1896년 한시적으로 유통됐던 1달러짜리 은 태환 증권(silver certificate) 이후 처음이라고 재무부는 설명했다.
제이컵 루 재무장관은 “양성평등에 대한 터브먼의 용기와 헌신은 민주주의의 이상이 구체화된 사례”라며 “여성이 너무 오랫동안 지폐 모델에서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재무부는 당초 10달러 모델인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을 여성 인물로 교체하는 방안을 추진해왔으나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의 폭발적 인기로 제동이 걸렸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벤 버냉키 전 연방제도이사회 의장 등은 공개적으로 “해밀턴은 안 된다. 빼려면 잭슨을 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재무부는 결국 10달러 앞면 모델로 해밀턴을 유지하되 뒷면에 여성참정권 운동가들 5명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5달러 지폐 뒷면에는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인권운동가 엘리너 루스벨트 등 3명의 모습을 넣기로 했다.
재무부는 2020년까지 이들 지폐 3종(20달러 10달러 5달러)의 최종 도안을 확정해 발표한다. 2020년은 여성 참정권 보장 100주년이 되는 해다. 경제전문매체 CNN머니 등은 “새 지폐들이 본격 유통되는 시점은 2030년경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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