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유종]슬로바키아의 세율 19%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9일 03시 00분


이유종 국제부 기자
이유종 국제부 기자
인구 550만 명의 슬로바키아는 1993년 1월 체코와 갈라서며 독립했다. 당시 경제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기자가 2000년 여름 수도 브라티슬라바를 방문했을 때 시내에서 가장 큰 건물이 영국 유통기업 테스코의 현지 매장이었다. 슬로바키아는 고령화와 높은 실업률, 심각한 지역 격차, 부족한 기술 등 숱한 문제를 떠안고 있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 불과했다.

1998년 10월 2대 총리에 취임한 미쿨라시 주린다(재임 기간 1998∼2006년)는 경제 성장을 위한 해법을 찾아야 했다. 실업률은 1998년 12.6%, 2001년 19.2%에 달했다. 게다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면 2007년까지 거시경제 지표를 EU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주린다 총리는 세제개혁을 선택했다. 세제의 효율성과 투명성 형평성 단순성을 높여 경쟁력을 높여가기로 했다. 2004년 1월부터 세율이 제각각이어서 복잡한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를 모두 세율 19%의 단일세제로 바꿨다. 단일세제를 채택한 나라는 슬로바키아가 유일했다.

그 대신 면세와 감세 혜택을 줄이거나 없앴다. 당연히 조세는 투명해지고 형평성도 높아졌다. 단순한 과세제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조세 저항도 줄어들었다. 탈세와 조세 회피도 감소했고 행정 간소화로 예산까지 아꼈다. 국민 대부분이 이전보다 세금을 덜 내게 돼 근로의욕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인세 증가로 전체 세수는 오히려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율은 2004년 세제개혁 전 2.4%에서 주린다 총리의 마지막 재임연도인 2006년엔 2.8%로 늘어났다. 세입도 2004년 143억 유로(약 18조5000억 원)에서 2010년 186억 유로(약 24조 원)로 증가했다.

외국인투자도 늘었다. 기아자동차는 2004년 폴란드 등 주변국들을 투자처로 검토하다 후보지 가운데 법인세율이 가장 낮은 슬로바키아에 공장을 지었다. 세계적인 자동차부품 회사인 독일의 콘티넨탈과 미국의 비스테온도 들어왔다. 2004년 5.1%에 불과하던 경제성장률은 2007년 10.5%로 껑충 뛰었다. 2001년 1만5000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GDP는 2014년 2만6000달러로 늘었다. 주린다 총리의 퇴임 이후 슬로바키아 정부는 2013, 2014년 세율을 고쳐 현재 법인세 22%, 소득세 25%, 부가가치세 20%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조세율보다 낮다.

‘과세의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특정 산업에 지나친 세금을 매기면 기업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조세 저항이 커진다.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도 고려해야 한다. 당장 슬로바키아처럼 단일세제로 개편하고 세금을 적게 매겨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관성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경제성장, 성장을 이끄는 분배를 염두에 두고 과세 전략을 짜야 한다. 지금 국회에선 법인세 인상을 놓고 여야의 힘겨루기가 한창이지만 과세 전략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유종 국제부 기자 pen@donga.com
#슬로바키아#세율#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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