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쓰는 美 선거 전문가들…“트럼프가 될 줄 몰랐다” 망신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트럼프가 공화당후보 될 줄 정말 몰랐습니다”
‘대선예측 족집게’ 네이트 실버, 트럼프 중도하차 예상했다 망신살
BBC “공화 경선전망 바보같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면서 수많은 선거 전문가와 정치평론가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트럼프 돌풍이 ‘찻잔 속 태풍’이라고 얕잡아봤다. 워싱턴포스트(WP) 파이낸셜타임스(FT)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들은 테드 크루즈(텍사스)나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의 역전승을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3일 트럼프가 인디애나 경선에서 압승하고 2, 3위 주자 크루즈와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가 잇달아 중도 포기를 선언하자 언론들은 일제히 ‘트럼프 승리를 예측 못 한 9가지 이유’(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트럼프에 대한 최악의 예측 12선’(WP) 같은 실패 연구 기사를 쏟아냈다.

트럼프 때문에 가장 망신당한 인물은 ‘족집게 대선 예측가’ 네이트 실버(36·사진). 통계학자이자 정치분석가인 실버는 자체 개발한 분석예측시스템을 토대로 2008년 대선과 2010년 상원의원 선거, 2012년 대선 등을 정확히 맞혔다. 그가 운영하는 선거분석 웹사이트 ‘FiveThirtyEight(538)’는 미국 대선 본선의 선거인단 수(538명)를 뜻한다.

WP는 4일 ‘최악의 예측 12선’ 중 첫 번째로 “실버가 지난해 8월 ‘우리의 예측시스템에 따르면 트럼프는 결코 공화당 후보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고 꼬집었다. 일부 정치 전문 매체는 “대선 족집게 실버가 트럼프에 대해선 최소 7번 이상 틀렸다”며 실버가 트럼프 인기를 과소평가하거나 폄훼했던 글을 줄줄이 올려놓았다.

지난해 하반기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자 실버는 “트럼프 지지율은 15∼20%에 불과하다. 주자가 17명이나 되기 때문에 그런 지지율로도 1위를 하는 것일 뿐”이라며 “80% 이상이 트럼프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의 지지세는 곧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난해 11월엔 “신문이나 방송이 ‘트럼프 여론조사 1위 결과’에 호들갑 떨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치도박 시장에서 트럼프 승률이 20% 정도라고 하는데 너무 높다. 트럼프 같은 사람이 주요 정당의 후보가 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버는 2월 1일 아이오와 주 첫 경선에서 트럼프가 크루즈에게 밀려 2위가 되자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가 다를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트럼프의 중도 하차’를 점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후보 지명이 확실해지자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1년 전 ‘트럼프가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그를) 바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공화당 경선을 근본적으로 잘못 봤다”며 장황한 반성문을 썼다. 그는 “가장 크게 잘못 생각한 건 ‘트럼프 같이 정통 보수 기조와 동떨어진 인물도 공화당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했다. 자유무역을 반대하고 부유세를 지지하고, 낙태에 대한 태도도 모호하고, 이라크전쟁에도 반대하는 ‘전혀 공화당과 맞지 않는 인물’이 유권자들의 온갖 불평불만을 대변하면서 후보 자리를 꿰찼다는 설명이다.

실버는 이 글에서 철저히 자기반성을 하기보다 △트럼프 홍보만 해준 언론 △트럼프를 낙마시킬 전략적 협력이 부재했던 공화당 △경쟁전당대회까지 가서 후보를 확정짓는 건 비민주적이라며 막판에 트럼프에게 50% 이상의 몰표를 몰아준 공화당 유권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다고 지적했다.

영국 BBC방송은 “우리가 이번 공화당 경선에서 배운 한 가지는 모든 선거 예측이 정말 바보 같았다는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트럼프#공화당후보#선거 전문가#미국#네이트 실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