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의 다바오 시. 교도소에서 벌어진 폭동사건 와중에 호주 여성 선교사가 집단 성폭행 끝에 숨졌다. 당시 시장이 그때를 회상했다. “그녀(선교사) 얼굴이 너무 예뻐서 내가 먼저 (강간) 했어야….” 당장 호주와 미국 대사가 항의하고 외교문제로 비화됐다. 그러자 그는 “입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것”이라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외교관계를 잘라 버리겠다”고 맞받았다. 그런데 진짜 대통령이 됐다.
▷9일 대선에서 당선된 로드리고 두테르테(71). 22년간 시장으로 재직하며 ‘다바오 처형단’이란 자경단을 조직해 1700명의 범죄 용의자를 재판 없이 사살했다. 최악의 범죄도시가 깨끗해졌다. 대선에 출마해서도 “대통령이 되면 범죄자 시체를 빨랫줄에 널어버리겠다” “범죄자 10만 명 시체를 마닐라 만(灣)에 처넣어 물고기를 살찌우겠다”는 험악한 말도 쏟아냈다.
▷‘필리핀의 더티 해리’란 별명도 얻었다. 강력계 형사가 범죄자를 거칠게 처단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미국 영화 ‘더티 해리’에서 따온 것. 인구 80%가 가톨릭 신자인 나라에서 지난해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춘부의 자식’이라고 욕해도, “장애인은 자살을 생각해보라”라는 험구를 내질러도 ‘범죄의 천국’ 필리핀의 국민은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 막말 대선후보는 많았지만 대통령이 된 건 그가 처음이다.
▷막말 정치인의 원조 격인 프랑스의 장마리 르펜 전 국민전선(FN) 당수. “나치의 유대인 학살 캠프는 역사에서 사소한 일” 같은 숱한 인종 비하 발언을 뱉었는데도 2002년 대선 결선투표까지 올라갔다. 브라질에선 여성 의원의 몸을 밀쳐 ‘성폭행범’이란 말을 듣자 “너는 손댈 가치도 없는 여자”라고 폭언했던 자이르 볼소나루 의원이 2018년 대권후보로 떠올랐다. 정치인의 막말은 가난과 치안부재 속에서 기성정치에 대한 분노에 부글대는 유권자의 정서를 유독가스처럼 파고드는 변종 포퓰리즘이다. 막말 하면 빠지지 않는 한국 정치판. 미국의 트럼프 같은 스타가 탄생할까봐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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