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7일 일본 미에(三重) 현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가국 정상들이 일본 보수의 ‘성지’로 꼽히는 종교시설인 이세 신궁을 방문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廣島) 방문에 이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외교적 우경화 행보에 주변국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과 교도통신은 12일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26일 오전 G7 정상들의 행사 일정에 이세 신궁 방문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세 신궁은 일본 왕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제사 지내는 신사로 과거 제정일치(祭政一致)와 국체(國體) 원리주의의 총본산 역할을 하던 곳이다. 아베 총리는 이세 신궁의 내궁(內宮) 입구에 있는 다리인 ‘우지(宇治)교’에서 각국 정상을 한 명씩 맞이하고 안내할 계획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6월 G7 정상회의 개최를 발표할 당시 이세 신궁에 대해 “일본 정신을 접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라며 “지도자들이 방문해 장엄하고 늠름한 공기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세 신궁은 A급 전범이 합사된 곳이 아니라는 점에서 야스쿠니(靖國)신사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곳은 보수층이 신성시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단순히 하나의 공원이나 휴양지를 찾는 것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0월 이세 신궁의 전통 의식인 ‘식년천궁(式年遷宮)’ 행사에 현직 총리로는 84년 만에 참석했다. 당시 아베 총리의 행보를 놓고 헌법이 규정한 정교(政敎)분리 원칙을 위반한 행위라는 논란이 일었다. 20년마다 한 번씩 있는 이 행사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4번 있었는데 일본 총리가 참석한 적은 2013년 한 번뿐이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말 재집권한 이래 매년 초 이세 신궁을 참배한 뒤 새해 업무를 시작한다.
일본 정부는 이세 신궁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해 G7 정상들이 참배가 아닌 방문 형식으로 경내를 둘러보게 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참가국 정상들이 평소에는 공개되지 않는 이세 신궁의 ‘미카키우치(御垣內)’를 견학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신궁을 정식 참배하는 것을 ‘미카키우치 참배’라 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G7 정상들을 이세 신궁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은 자신의 지지층인 보수 세력을 의식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세계 지도자들을 단체로 일본 보수의 본산인 이세 신궁으로 안내해 아베 외교의 승리를 세계만방에 떨치는 효과를 노리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중국에서 커지고 있다. 구이융타오(歸泳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교수는 11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 기고문에서 “아베 신조 총리도 난징(南京)을 찾아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맞춰 27일 현지에 대표단을 보내고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기로 했다. 경남 합천의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관계자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중 2584명이 생존해 있지만 70년이 지나도록 일본과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으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sya@donga.com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 합천=강성명 기자
:: 이세(伊勢) 신궁 ::
일본 미에(三重) 현에 있는 신궁으로 도쿄(東京)의 메이지(明治) 신궁, 오이타(大分)의 우사(宇佐) 신궁과 함께 일본의 3대 신궁으로 불린다. 일본 왕실의 선조인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기리는 곳으로 매년 600만여 명의 참배객이 찾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