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상원이 12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69)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 개시를 결정하면서 호세프의 직무는 길면 180일, 11월 중순까지 정지된다. 그의 재임 기간 중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8월 5∼21일)도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의 지휘 아래 치르게 됐다. 군부정권에 맞선 ‘좌파 여전사’ ‘브라질의 대처’로 불려온 정치인의 끝 모를 추락이다. ○ ‘브라질의 대처’에서 탄핵 대통령으로
호세프 대통령은 2010년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투쟁의 인생을 살았다. 부유한 불가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0대 초반부터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다. 23세이던 1970년부터 2년간 감옥살이를 하며 모진 고문도 당했다. 1972년 출소 후 대학 공부를 시작해 1977년 상파울루 주 캄피나스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민주노동당(PDT) 창당에 참여하며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2001년 노동자당(PT)에 입당하면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71)과 인연을 맺었다. 2003년 룰라 정부 출범과 함께 에너지부 장관에, 2005년에는 국무총리 격인 정무장관으로 발탁됐다.
룰라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땐 철의 여인이라며 ‘브라질의 대처’로 추앙받았다. 2014년엔 재선에 성공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해 브라질 최대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가 집권 PT에 뇌물을 건넨 비리 스캔들이 터졌다. 경제마저 추락하자 민심은 돌아섰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5년 만에 최저치인 ―3.8%로 곤두박질쳤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재정적자가 적은 것처럼 꾸며 연방회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3년 룰라 정부에서 시작해 13년간 지속된 좌파 정권의 부패에다 끝 모를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국민 여론이 악화돼 호세프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탄핵심판 개시를 ‘쿠데타’에 비유했다. 그는 “범죄가 입증되지 않았는데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한 것은 헌법 훼손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사적 과오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조기총선 가능성 힘 얻는 룰라 전 대통령
호세프 대통령이 퇴출되더라도 브라질의 혼란한 정국은 쉽게 안정되기 어렵다. 그를 대체할 인물이 현재로선 마땅찮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승계 1순위인 테메르 부통령도 탄핵 위기에 몰렸다. 그도 호세프 대통령처럼 의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정부 지출을 늘리는 법안에 서명했다. 승계 2순위인 에두아르두 쿠냐 하원의장은 페트로브라스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직무정지 명령을 받았다. 3순위인 헤낭 칼례이루스 상원의장 역시 페트로브라스 부패 스캔들 연루 의혹이 제기되면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다.
이 때문에 조기대선론이 힘을 얻고 있다. 10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때 대선을 함께 치르자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0%가 호세프 대통령과 테메르 부통령의 동반 퇴진 후 조기 대선을 치르는 게 좋다고 답했다.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되면 ‘정치적 멘토’인 룰라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 수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면 좌파 진영을 이끌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경우 룰라는 좌파 정당을 중심으로 한 범사회적 연대조직인 ‘브라질민중전선(FBP)’을 이끌며 조기 대선을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룰라가 대선 후보로 나설 것으로 점치는 이들도 있다. 집권 시절 부패 의혹이 제기되면서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상징성과 정치력은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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