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전승훈]말뫼 시장의 눈물과 희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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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파리 특파원
전승훈 파리 특파원
특파원으로 출장을 준비할 때마다 제일 어려운 것은 섭외다. 유럽에선 최소 2, 3주 전에 취재 요청을 해야 관료나 전문가들과 약속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취재는 늘 시간과의 싸움이다. 마냥 느긋하게 답변을 기다릴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달 초 다녀온 스웨덴 말뫼 출장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조선업 구조조정이 뜨거운 이슈가 된 상황에서 우리보다 먼저 중공업 구조조정을 경험한 선진국 현장을 찾아가는 기획을 준비했다. 2002년 울산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판 비극적인 대형 크레인이 놓여 있던 말뫼 조선소는 지금 어떤 모습일지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말뫼는 조선업 구조조정의 아픔을 딛고 청정에너지와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1994년부터 2013년까지 19년 동안 말뫼 시장을 지낸 일마르 레팔루 전 시장(72)의 강력한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출장을 떠나기 전 이곳저곳 관계 기관에 섭외를 부탁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다행히 구글을 검색해 레팔루 전 시장의 이메일을 찾을 수 있었다. 취재를 위해 만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는데 바로 다음 날 연락이 왔다.

그는 ‘터닝토르소’ 건물 1층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가 재임 당시 ‘말뫼의 눈물’로 불린 대형 크레인 대신에 말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선정했던 건물이다. 레팔루 전 시장은 북유럽 최고 높이 건물인 터닝토르소의 54층 스카이라운지로 기자를 안내했다. 말뫼의 항구와 옛 조선소 부지, 크레인이 놓여 있던 곳, 바다 건너 덴마크 코펜하겐을 연결하는 외레순 대교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레팔루 전 시장은 노트북을 켜고 1986년 말뫼 조선소가 문을 닫으며 도시 인구의 10%인 2만8000여 명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던 당시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는 경쟁력을 잃고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해 온 조선업의 문을 닫고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신(新)산업’을 찾아냈던 기업과 노조 간 ‘끝장 토론’의 힘겨웠던 과정을 차근차근 들려줬다.

그는 이어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자신의 볼보 승용차에 기자를 태워 손수 운전하며 옛 조선소 터에 세워진 친환경 주택단지와 바이오 산업단지 곳곳을 안내했다. 레팔루 전 시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 실업이 발생한다”며 “복지연금보다는 대규모 친환경 인프라 투자로 노동자들을 흡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가장 큰 업적으로 최첨단 기술대학 유치를 꼽았다. 현재 말뫼에는 전 세계 179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살고 있다. 벤처기업들도 몰려왔다. 말뫼는 퇴직한 연금 노동자들의 쇠락한 도시에서, 자유롭고 세련된 코스모폴리탄 젊은이들의 도시로 이미지가 크게 바뀌었다. 레팔루 전 시장은 10∼20년 후 이 도시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는 반드시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레팔루 전 시장은 퇴임 후에도 코펜하겐-말뫼 항만운영기구 이사장과 유엔 지속가능한 도시개발 자문역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바쁜 삶에도 불구하고 불쑥 찾아온 외국 기자를 위해 도시 곳곳을 직접 설명해주는 그로부터 뿌듯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둡고 희망이 없던 도시를 21세기 친환경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키운 그를 수많은 말뫼 시민은 아직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한국에도 자신이 재임 중 변화시킨 도시 곳곳을 걸으며 친근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전직 시장이 있을까. 말뫼의 변화가, 그리고 이를 이끈 전직 시장이 무척 부러워 보인 출장이었다.

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스웨덴 말뫼#구조조정#터닝토르소#레팔루 전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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