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국회 답변에서 여러 차례 자신을 ‘입법부의 장(長)’이라고 언급해 논란이 되고 있다. 단순한 말실수인지, 본심인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16일 중의원 예산위에서 제1야당인 민진당 야마오 시오리(山尾志櫻里) 정조회장이 보육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심의를 요구하자 “야마오 의원은 의회 운영에 대해 좀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며 “나는 입법부, 입법부의 장이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는 국권의 최고기관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행정부와는 별개의 권위로서 어떻게 심의를 해나갈지 각 당 및 회파(원내교섭단체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아베 총리의 이 발언에 대해 민진당 측에서 정정 요청이 나오진 않았다. 그러나 아베 총리 바로 뒤에 앉아 있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지방창생상이 깜짝 놀라 아베 총리를 쳐다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입법·행정·사법 기능을 국회, 내각, 법원이 각각 나눠 맡는 삼권분립 원칙에 비춰보면 내각의 수반인 총리를 입법부의 수장(首長)이라고 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말이다. 양원제인 일본에서는 중의원 의장과 참의원 의장이 입법부의 수장으로 간주된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18일 중의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심의 과정에서도 같은 발언을 하다 주변에서 “행정부, 행정부”라고 웅성대자 “아, 행정부입니까, 실례, 잠시”라며 넘어갔다. 당시에도 자신의 발언을 정정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가 처음 집권했던 2007년에도 같은 실수가 있었다. 5월 참의원 헌법조사특별위원회에서 “내가 입법부의 장”이라고 말했다가 출석한 의원으로부터 “당신은 행정부의 장”이라고 정정을 받았다.
이처럼 반복되는 발언에 대해 실수라고 보는 쪽에서는 “측근들이 빨리 고쳐주지 않으면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에 반복되는 실언을 고의거나 국회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본인 생각의 표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집권 자민당이 개정헌법에 넣고 싶어 하는 ‘긴급사태조항’이 도입된다면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함으로써 국회 사후 승인에 의해 행정부가 입법부처럼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정령을 제정하거나 재정지출을 할 수 있게 된다. 현재 ‘행정부의 장’인 아베 총리가 말 그대로 ‘입법부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아베 총리가 눈앞에서 ‘입법부의 장’이라는 발언을 하는데도 지적하지 않는 민진당에 대해서는 ‘논평할 가치도 없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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