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프리킥]대만 첫 여성 총통과 박 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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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논설위원
허문명 논설위원
며칠 전 대만 외교부 사람들과 만났다. 한국에 대해 묻기 전 일본에 대해 먼저 물었다.

―50년이나 지배받았는데 일본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원주민 학살 같은 못된 짓도 했지만 발전소 도로 학교 병원을 지어 근대화의 기반을 닦아주었다. 역사에서 좋은 것 나쁜 것을 같이 알아야 하지만 미래를 위해 좋은 것을 위주로 살려나가야 한다.”

대만은 장제스가 마오쩌둥에게 패한 뒤 지도층을 이끌고 이주해 원주민과 섞인 나라다. 장제스는 중국 대륙 지도자 시절 ‘도수관병(徒手官兵)’ 정책을 편 적이 있다.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했을 때 중국에 진주했던 100만 일본군을 모두 일본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그의 대국적 아량에 아직도 일본은 고마워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외교관들에게서도 과거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대국의 혜안이 느껴졌다.

장제스는 한국의 상하이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지원했다. 윤봉길 의사 의거에 “중국인이 못 하는 일을 한국인이 했다”며 감동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방한했던 그는 진정한 친한파 중국 지도자였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확산되던 시절 중국을 마오쩌둥 정권에 내줬다.

―1992년 단교(斷交)를 해서 대만인들은 한국을 싫어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좋아한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과 수교하면서 우리와 단교한 사정도 이해한다. 문제는 과정이었다. 일본은 단교할 때 전직 총리가 찾아와 정중히 양해를 구했고 미국은 단교 직후 ‘대만관계법(TRA)’을 만들어 실질적 관계는 유지 강화하는 결정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무려 1년 전부터 양해를 구했다. 한국은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 점이 서운하다.”

오늘 대만에선 한국 민주당 격인 민진당 출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취임한다. 대만은 물론 중화권 첫 여성 지도자여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 때만큼이나 언론의 관심이 높다. 외교부 사람들은 “한국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나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과 대만은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정치 지도자를 택할 때마다 리더십 체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참고해왔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9년 뒤인 96년 대만도 첫 총통 직선제가 실시됐고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2년 뒤인 2000년에는 50년 국민당 독재를 종식하고 민진당 천수이볜이 야당으로의 첫 정권 교체를 실현했다. 여성 대통령도 한국이 3년 앞선다.

우리는 지금 김정은의 북한을 상대하면서 일본 미국 중국이 각축하는 틈바구니에서 나름의 생존방식을 찾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의 ‘북한 컨트롤’을 기대했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대만은 한국의 관심권에서 밀려나 있었다. 우리가 시진핑의 중국 본토만 쳐다볼 때 대만은 한류 열풍에 흠뻑 매료돼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차이잉원 총통은 중국 일변도 경제 의존을 줄이고 5억 인구의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는 ‘신남향정책(新南向政策)’을 내걸었다. 대만은 한국의 오랜 친구이지만 중소기업 강국이란 점에서 대기업 위주로 경제성장을 한 우리와 경제적으로 경쟁관계이자 보완관계에 있다. 박 대통령은 1987년 대만 문화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국회의원으로 있던 2001년에는 대만을 왕래하며 문화대 최고산업전략과정을 수료했다. 대통령의 중국어 실력도 만만치 않다고 알려져 있다. 아시아에서 배출된 두 여성 지도자가 만나 화기애애하게 경제협력을 다짐하는 모습이 기대된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대만#차이잉원 총통#신남향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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