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어제 원폭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위령비에 헌화하고 희생자들을 추도했다. “10만명 이상의 일본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이들, 수천 명의 한국인, 수십 명의 미국인 포로를 포함한 사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왔다”며 “핵무기 없는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핵 폐기 노력을 인정받아 200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내년 1월 임기를 마치기 전에 역사적 피폭 현장을 찾아 평화외교의 유산을 남긴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원폭 피해도 언급했지만 위령비에서 150m 떨어진 한국인 위령비는 끝내 찾지 않았다. 히로시마 원폭 사망자 14만 명 중 2만 명의 한국인 사망자를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섭섭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는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나란히 헌화하고 일본인 피해자들을 포옹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것만으로도 ‘피해자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아베 정권에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한 오바마 대통령이지만 현재 가장 위협적인 북한의 핵에 대해서는 ‘전략적 인내’로 일관함으로써 결국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오바마의 실패로 북한의 핵 미사일이 한국과 일본을 위협하게 됐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오바마 대통령은 26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일본에서의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이 당장 미국과 국제사회에 가장 임박한 위험 대상은 아니라며 중장기적 위협이라고 말했다. 북핵의 위협에 속수무책인 채 국제사회의 공조만 기대하는 한국은 대북(對北)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행보는 겉으로는 ‘과거와의 화해’ 색채가 짙지만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충실히 협조한 아베 총리에게 보상을 안겨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외교안보팀은 힘의 논리가 만들어내는 지정학적 격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외교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원폭보다 더한 재앙을 안길 수도 있는 북핵을 머리에 인 나라에서 외교안보의 방향타를 조종할 로드맵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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