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일본 도쿄(東京) 오다이바(お台場)의 ‘자메이카 축제’ 행사장. 검은색 봅슬레이 썰매를 탄 젊은 여성 두 명이 “정말 멋지다”며 팔을 벌려 포즈를 취했다. ‘시타마치(下町·변두리) 봅슬레이’ 로고가 붙은 썰매 앞에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을 노리는 자메이카 선수들 사진이 들어간 대형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호소가이 준이치(細貝淳一) 매터리얼 대표는 기자에게 “마치코바(町工場·동네공장)가 만든 썰매가 평창에서 놀랄 일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1년부터 도쿄 오타(大田) 구의 중소기업들이 모여 시작한 ‘변두리 봅슬레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이다.
일본 기술력으로 봅슬레이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2011년이었다. 오타 구산업진흥협회 한 직원이 ‘봅슬레이 썰매는 모두 외국산’이라는 뉴스를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 호소가이 대표는 “동네공장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고 제조업의 매력을 젊은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동네공장들이 의기투합했다”고 회상했다.
봅슬레이는 시속이 최고 150km나 돼 ‘빙판의 F1(포뮬러원)’으로 불린다. 페라리, 맥라렌, BMW 등 슈퍼카 제작사들이 카본 등 첨단소재로 만들어 대당 가격이 1억∼2억 원이나 된다. 이런 봅슬레이 썰매를 동네공장이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호소가이 대표는 “기술은 처음부터 자신 있었다”고 했다. 오타 구에는 금속 분야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3500곳이 모여 있다. 종업원 10명 미만이 80%로 영세하지만 전문성은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동네공장 30여 곳이 모였지만 봅슬레이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외국산 썰매를 해체해 도면을 만들고 200여 개의 부품을 분담해 만들었다. 첫 썰매 제작에 걸린 기간은 불과 12일. 2012년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일본봅슬레이연맹은 소치 올림픽에서 외국산 썰매를 선택했다. 프로젝트팀은 4년 후를 기약하며 썰매 개량에 매달렸다. 문제는 테스트였다. 호소가이 대표는 “시험 주행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해야 하는데 일본에서는 힘들었다”며 “유럽까지 썰매 운송비용만 왕복 140만 엔(약 1500만 원)이나 들었다”고 했다.
이때 여론이 움직였다. 신문들은 ‘동네공장이 기술력으로 세계무대를 두드린다’며 대서특필했고 드라마,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도 이들의 도전을 다루자 대기업들이 스폰서를 자청해 3500만 엔(약 3억8000만 원)의 후원금이 금세 모였다.
유럽 현지 테스트를 통해 성능이 개선된 모델을 내놨지만 지난해 일본 대표팀은 다시 독일산을 택했다. 프로젝트팀은 포기하지 않고 해외 문을 두드렸고 영화 ‘쿨러닝’으로 유명한 자메이카팀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했다. 자메이카팀은 올 1월 일본을 방문해 평창 올림픽에 함께 도전하기로 했다.
호소가이 대표는 “자메이카팀은 지난번 대회까지 최약체였지만 최근 미국 대표였던 세계 정상급 선수가 귀화했다. 올가을에는 최고의 썰매가 나오기 때문에 기대할 만하다”고 자신했다. 자메이카 팀은 시험 주행을 마친 뒤 ‘평창 금메달도 꿈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일본에서는 최근 제조 중소기업을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오타 구의 중소기업이 로켓 핵심 부품을 만드는 드라마 ‘변두리 로켓’은 지난해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연두 기자회견에서 대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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