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최근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이번 소송은 중국 기업을 ‘폭스콘’의 렌즈로 들여다보았던 필자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대만 업체인 폭스콘은 중국의 선전(深(수,천)) 광둥(廣東) 청두(成都) 등에 대규모 공장을 가동하면서 애플의 아이폰 등 글로벌 정보통신 기업의 제품을 하청받아 조립, 생산해왔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불리고 있지만 저가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할 뿐 기술력은 우리에게 뒤져 있다는 자부심을 은근하게 즐겨 왔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한국의 소비자들이 오죽하면 중국 제품이 기대 이상으로 좋을 때 ‘대륙의 실수’라고까지 불렀을까.
하지만 이 표현을 함부로 쓰기는 어려운 변곡점을 맞고 있음을 화웨이가 최근 특허소송으로 보여주고 있다. 화웨이의 지난해 연매출만 608억 달러(약 72조 원)에 이르며 연구개발(R&D) 투자비용이 전체 매출의 15.1%로 삼성전자(7.5%)의 배에 이른다. 화웨이는 지난해 특허등록 세계 1위 기업에 올랐다.
중국 정부가 개혁 개방 이후 펼쳤던 ‘시장환기술(市場換技術)’ 정책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해외 기업에 중국 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흡수한 뒤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올리겠다는 전략과 함께 아예 해외 선두 기업을 사들여 첨단 기술과 특허를 갖고 오겠다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올 들어 5월까지 중국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규모가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연간 실적을 추월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중국이 M&A를 통해 사물인터넷(IoT), 3차원(3D) 프린팅, 나노기술 등 미래 신사업 분야의 특허를 대거 확보하면서 이 분야 세계 특허 출원 1위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 카피캣(모방꾼)’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샤오미까지 최근 드론 관련 첨단 특허 20여 개를 확보하고 드론 시장 장악을 선언했다.
국내 기업이 구조조정과 생존을 놓고 고민할 때 중국은 부지불식간에 특허와 첨단기술의 ‘만리장성’을 차곡차곡 쌓아왔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에는 10대 핵심 산업을 육성해 2025년까지 신성장산업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야심 찬 계획과 실행력이 자리 잡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2014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1위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면 자족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신기술로 무장한 제품을 중국 시장에 내놓으려다가 중국 기업의 특허 소송에 두 손을 들고 철수하는 국내 기업들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중국발 특허 공세는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가 덩치가 훨씬 큰 중국을 따라 대형 M&A에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삼성전자가 2004년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앤디 루빈을 퇴짜 놓아 기술이 구글로 넘어간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에는 신기술에 도전하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산재해 있다. 또 세계 유수 기업들이 개방하고 있는 기술 가운데 뜻하지 않는 진주를 발굴할 수 있다. 잠재력 있는 기술과 특허를 볼 수 있는 ‘매의 눈’을 기르는 틈새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이는 단번에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렵더라도 끊임없이 신산업 분야의 M&A를 시도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이런 노력을 포기한다면 중국 제품을 놓고 ‘대륙의 실수’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상황을 우리가 거꾸로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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