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힐러리 vs 트럼프’ 확정
힐러리 8년만에 대선후보 꿈 이뤄… 둘다 당내 전폭적 지지 못 끌어내
샌더스, 힐러리 손 들어주기 거부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69)이 6일 민주당 대선 후보 확정에 필요한 과반수 대의원을 확보함에 따라 11월 8일 미국 대통령 선거는 클린턴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70)의 대결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클린턴과 트럼프는 모두 물려받은 것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게 많다. 클린턴이 자수성가해 정치 명문가를 일궜다면 트럼프는 탁월한 재테크로 부동산 명가(名家)를 이뤘다.
클린턴은 영국 웨일스 이민자 가문 출신 아버지와 캐나다인과 인디언 핏줄이 섞인 어머니가 일군 중산층 가정의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 뒤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정치적 야심을 키워 왔다. 1975년 결혼 후 남편이 아칸소 주 법무장관, 아칸소 주지사를 거쳐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최고의 참모 역할을 수행했다. 재선에 성공한 남편이 정계에서 은퇴하자 상원의원(뉴욕 주)을 거쳐 2008년 민주당 대선 유력 주자로 떠올랐지만 ‘최초의 흑인 대통령’ 바람을 일으킨 버락 오바마의 벽에 부딪쳐 좌절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을 지내며 절치부심한 끝에 8년 만에 민주당 대선 후보의 자리를 쟁취했다.
트럼프는 부유한 독일 이민자 가문 출신 아버지와 스코틀랜드 이민자 가문의 어머니 사이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그는 사립 기숙학교인 뉴욕군사학교를 거쳐 1964년 뉴욕의 포덤대에 입학해 2년을 다닌 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로 편입해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직후 아버지의 도움으로 부동산 사업에 뛰어든 트럼프는 전 세계에 ‘트럼프’를 내건 호텔과 골프장, 카지노 등을 운영하는 트럼프그룹을 일궜고 리얼리티 TV쇼를 진행하며 대중적 명성까지 얻었다. 이런 부와 명성을 바탕으로 공화당 대선 경선에 ‘바람잡이’로 투입됐으나 유력 후보 16명을 모두 제치고 공화당 대선 후보의 자리를 꿰찼다.
뉴욕타임스는 올해 대선이 이례적으로 ‘비(非)호감’ 후보들 간의 대결로 치러지게 됐다고 보도했다. 클린턴과 트럼프 모두 유권자들의 호감도 수치가 낮을 뿐만 아니라 당내에서도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4일 존 케이식 후보의 중도 하차로 일찌감치 사실상 대선 후보가 됐음에도 당내에서 완전한 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클린턴도 당내 라이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 주)의 승복을 받아내지 못했다.
클린턴의 과반수 대의원 확보 발표가 난 6일 샌더스 선거캠프는 “7월 25일 치러질 전당대회 전까지 민주당 최종 후보는 없다”며 클린턴의 손을 들어주기를 거부했다. 마이클 브리그 샌더스 선거캠프 대변인은 “언론이 판단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실제 전당대회가 치러지기 전까지 슈퍼대의원 수를 집계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원칙을 무시했다”면서 “슈퍼대의원들은 지금부터 전당대회 전까지 얼마든지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샌더스 캠프는 7일 캘리포니아와 뉴저지 등 6개 주 경선에서 승리해 일반대의원 수의 격차를 대폭 줄이면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던 슈퍼대의원 중 상당수가 샌더스 지지로 돌아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클린턴보다 본선 경쟁력이 높은 것도 샌더스가 버티는 이유다. 정치전문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5월 13일∼6월 5일 실시된 양자대결 지지율 조사 7개를 평균한 결과 클린턴(44%)은 트럼프(42%)를 2%포인트 앞서지만 샌더스(49.7%)는 트럼프(39.3%)를 10.4%포인트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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