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여성 정치인도 드물다. 잘나가는 변호사에서 정치인의 아내로, 퍼스트레이디에서 상원의원으로, 대선 후보에서 국무장관으로, 그리고 두 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미국 대통령 후보가 됐다. 그가 7일 경선 승리를 확정 지은 직후 뉴욕 주 브루클린에서 “오늘의 승리는 누구 한 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세대에 걸쳐 투쟁하고 희생하며 이 순간을 가능하게 만든 여성과 남성들의 승리”라고 연설했다.
▷여성이 흑인보다도 참정권을 늦게 부여받았으니 클린턴이 대선 후보가 된 것은 기념비적 사건이다. 미국 국부로 추앙받는 토머스 제퍼슨 3대 대통령이 “숙녀분들이 정치로 이마에 주름살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정치투쟁으로 골머리를 앓는 남편들의 마음을 달래는 데 만족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불과 200년 전. 미국에서도 유리천장은 강고했다.
▷클린턴은 미국 대통령이 될 만한 여성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꼽은 적이 있다. 도로시 로댐이 태어난 1919년 6월 4일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수정헌법이 통과된 날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여덟 살 로댐은 세 살 여동생의 손을 잡고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의 할머니 집까지 사흘간 기차여행을 한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클린턴은 경선 승리를 확정하는 연설에서 또다시 어머니를 언급했다. “어머니는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한테 절대로 물러서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그것은 꽤 옳은 조언이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를 악당으로 묘사하며 어머니 가르침대로 그에게 맞서겠다는 투지를 보인 것이다.
▷이번 대선은 정책과 토론이 실종된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막말로 허풍을 치는 트럼프에 비해 클린턴은 워싱턴의 낡은 기득권 이미지가 부담이다.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 18∼33세 젊은 유권자들이 “클린턴을 지지하느니 트럼프 쪽으로 가겠다”고 말할 정도다. 최선이 아니면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국 유권자는 괴롭긴 하겠지만 그래도 역사는 진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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