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를 결정짓는 국민투표가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세계 경제를 뒤흔들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브렉시트 가능성마저 높아지면서 이미 세계 금융시장은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이달 23일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세계 경제에는 메가톤급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국제금융의 중심지인 영국을 필두로 세계 금융시장은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또 EU와의 교역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국을 비롯한 각국 실물경제도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 국내 영국계 자금만 36조 원…대거 이탈 우려
현재 세계 금융시장은 영국의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출렁이고 있다. 최근엔 브렉시트 우려로 불안감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이탈해 선진국 장기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대거 쏠리는 모습이다.
10일(현지 시간) 독일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일제히 사상 최저치로 하락(채권 가격은 상승)했다.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 역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여파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유럽 주요국 증시는 10일까지 사흘 연속 하락했다. 특히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최근 1주일간 달러 대비 약 1.7% 하락해 4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만약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파운드화는 물론이고 유로화 가치가 동시에 추락해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씨티그룹은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파운드화 가치가 주요 교역 상대국 대비 15∼20% 급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로 인해 미 달러화 강세가 심해지면 한국 등 신흥국에서는 통화 가치가 급락하고 외국인 자금 유출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3월 말 현재 국내 증시에서 영국계 투자자가 보유한 상장주식 규모는 약 36조 원이다.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전체 주식의 8.3%로 미국(약 172조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영국계를 비롯해 미국계 투자자가 이탈하며 국내 시장이 흔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한국 경제, 수출 타격 우려”
브렉시트는 영국의 무역장벽을 높여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대외교역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 또 중국에 이어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인 영국마저 성장 추진력을 잃게 돼 글로벌 경제의 회복세가 지연될 것으로 우려된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 이후 향후 15년간 자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7.5%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영국이 EU에 잔류하는 것이 세계 경제와 지정학적 안정을 위해 최선”이라며 “결과가 반대로 나온다면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독일과 함께 유럽 경제를 이끌어온 영국의 이탈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려 EU 붕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EU 경제가 흔들리면 재정이 불안한 그리스,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의 부도 위험이 다시 높아질 수 있다.
영국과 EU 경제가 동시에 흔들리면 이 시장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영국이 차지한 비중은 1.4%, EU는 9.1%다. 또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한국은 영국과 별도로 신규 FTA를 체결해야 하는 과제도 떠안게 된다.
한국은 이미 미국과의 무역 전선에도 먹구름이 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이달 말 한국 등 세계 각국과 체결한 모든 FTA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평가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미국은 이 보고서를 통해 대한(對韓) 무역적자 문제를 거론하며 통상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유력한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역시 한미 FTA의 재협상을 주장하는 등 보호무역주의 색채를 띠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대(對)유럽 수출이 줄고 달러 강세까지 겹치면 한국 등 신흥국의 수출이 악화돼 세계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브렉시트, 트럼프 효과 등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돼 전 세계 무역 규모가 위축되고 외국인 투자나 취업 등에 대한 규제도 심해질 수 있다”며 “한국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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