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보수당 소속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국민투표 이후 캐머런 총리의 거취에 대해 “결과가 유럽연합(EU) 탈퇴로 나온다면 바로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다”며 “EU 잔류 결과가 나오더라도 큰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브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부쳐 영국을 두 동강 낸 책임만으로도 이미 캐머런 총리는 브렉시트 찬성과 반대 진영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EU 잔류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조차 “찬반 유세는 나라를 양분시켰다”며 “보수당 내 분열을 봉합하기 위한 캐머런 총리의 국민투표 도박이 헛됐음이 증명됐다”고 비판할 정도다.
2013년 1월 캐머런 총리는 총선 공약으로 브렉시트 국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EU에 회의적인 당내 의원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반(反)EU 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의 공격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묘수’로 보였던 것이다. 비록 국제적으로는 ‘무모한 도박’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캐머런 총리는 지난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해 일단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친정 식구인 보수당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 채 국민투표를 맞으면서 외톨이 신세로 전락했다.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보수당 소속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은 탈퇴 진영을 이끌고 있다.
WP에 따르면 보수당 내에는 EU에 우호적인 친기업적 의원들과 민족주의 전통을 강조하는 EU 회의론자들이 섞여 있다.
지난주 영국 여론조사기관 ‘오피니엄’ 조사에 따르면 야당인 노동당 지지층은 63%가 EU 잔류를, 영국독립당 지지층은 93%가 EU 탈퇴를 각각 요구한다고 밝혀 대체로 의견이 명확했다. 반면 보수당 지지층은 EU 잔류(46%)와 탈퇴(43%) 의견이 양분돼 있다.
보수 진영 중 EU 회의론자들은 존슨 전 런던 시장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23일 투표에서 EU 탈퇴 결과가 나올 경우 존슨 전 시장이 차기 총리가 되는 건 거의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캐머런 총리는 ‘더타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국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총리직을 유지할 것”이라며 “EU 탈퇴라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내가 다른 EU 국가들과 협상을 이끌 최적임자”라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는 야당인 노동당과 손잡을 수밖에 없게 되다 보니 “나서지 않는 게 오히려 나았다”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왜 불필요하게 국민투표를 공약해 이런 분란을 만드느냐”는 보수 진영의 비판도 만만찮다. 게다가 난민과 이민 문제를 이슈화해 국민정서를 제대로 건드린 탈퇴 진영과 달리 캐머런 총리는 “탈퇴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근거로 어려운 통계 수치만 늘어놔 선거 전략에서도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친정 진영의 굳은 지지 없이 감행하는 승부수가 ‘자충수’가 돼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조에 친화적인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기업에 우호적인 노동법을 밀어붙이고 있으나 지지 기반이 돌아서면서 10%대의 낮은 지지율이 좀체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에선 2011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소속 당인 새누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 주민투표 승부수를 걸었다가 시장직을 내놓은 것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욕심으로 당에 부담을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