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집필 역사교과서 1권 첫선…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다뤄
현대사 담은 4권까지 발간 계획… 獨언론 “관용의 역사 가능해져”
제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와 피해자인 독일과 폴란드가 함께 역사 교과서를 만들었다. 양국은 종전 후에도 영토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 왔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로 갈등을 되풀이하는 한국과 일본에 본보기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외교부는 22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교장관과 비톨트 바슈치코프스키 폴란드 외교장관이 베를린 로베르트융크고교에서 공동 역사 교과서 ‘유럽-우리의 역사’ 제1권을 공개했다고 발표했다. 제1권은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유럽의 역사를 다뤘다.
이번에 발간된 공동 역사 교과서는 똑같은 내용을 독일어와 폴란드어로 펴낸 것이다. 양국 외교부는 이번 가을 새 학년도부터 양국의 고교생들이 이 교과서를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국은 유럽의 현대사까지 아우르는 ‘유럽-우리의 역사’를 제4권까지 순차적으로 편찬할 계획이다.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공동 역사 교과서 덕분에 논쟁을 완화하고 틀에 박힌 역사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상대방에 대한 관용도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독일과 폴란드의 공동 역사 교과서 발간은 44년 동안 이어져 온 노력의 산물이다. 양국은 1972년 역사교과서위원회를 발족했으며 1976년 역사 교과서 공동 권고안을 채택했다. 이후 매년 양국 관계사의 주요 테마에 대한 공동 연구와 교과서 분석 결과를 책으로 묶어 냈다. 2000년에는 20세기 현대사에 대한 교사용 안내서를 펴냈다. 역사 교과서 공동 편찬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집필과 제작에 돌입한 것은 2008년부터다.
이번에 나온 제1권에선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유대인을 학살했던 제2차 세계대전 등 근대사를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세사에서도 양국의 견해가 엇갈리는 부분이 많았다. 양국의 상황에 따라 역사적 사건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폴란드 영토의 상당 부분이 옛 독일의 영토일 정도로 양국의 역사는 얽히고설켜 있다. 나치 점령기 당시 폴란드에선 대량 학살과 강제 노동이 이뤄졌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폴란드가 차지한 옛 독일 영토에서 독일인들이 추방되기도 했다. 향후 3권의 공동 역사 교과서를 발간하는 과정에선 더 많은 논의와 토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이미 나치 등 부끄러운 현대사를 포함한 유럽의 역사를 적국이었던 프랑스, 폴란드 등과 상의해 자국의 역사 교과서를 편찬해 오고 있다. 2006년에는 프랑스와 공동 역사 교과서를 발간했다. 이 역시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양국은 1935년 공동 역사 교과서 편찬 지침을 처음 만들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등으로 70년 이상 편찬 작업이 지연됐다.
80년 가까이 걸려 만든 공동 역사 교과서는 양국이 100% 합의할 수 있는 사실을 먼저 기술하고 해석이 엇갈리는 논쟁적인 사안은 양국의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나치에 부역했던 프랑스 비시 정권의 어두운 면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나치 독일의 만행도 정확하게 기록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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