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後 세계질서 지각변동… 도전받는 ‘팍스아메리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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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쇼크]71년 유지된 ‘슈퍼파워 미국’ 위기
美주도 자유경제-집단안보 위기 ‘포스트 1945체제’ 가능성도 거론
‘발등의 불’ 오바마, 트럼프 겨냥 “증오-편견 부추기는 사기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71년간 유지됐던 미국 주도의 글로벌 정치와 경제 질서에 일대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만들어온 세계 질서를 대체할 ‘포스트 1945체제’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의 1968년’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 찰스 카이저는 25일 CNN 인터뷰에서 “브렉시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서구 문명에서 ‘최악의 퇴보’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미국이 ‘팍스아메리카나’의 핵심 축으로 삼았던 전통적 자유경제 체제에 대한 의구심을 확산시키고 있다. 브렉시트 여파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주창하는 보호무역주의는 어느 때보다 재조명받고 있다. 그는 공화당 경선 기간 내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미국이 맺고 있는 무역협정의 폐기와 개정을 주장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 차원에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추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미국 안팎에서 적지 않은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TPP에는 반대한다.

여기에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미국이 전후 주도해 온 세계 금융질서도 거센 변화와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25일 중국 베이징에선 57개국 대표들이 모여 중국이 세계은행 등에 맞서 창설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첫 공식 회의를 열어 미국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브렉시트는 미국이 주도해 온 서방국의 안보 지형에도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영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는 잔류한다고 밝혔지만 경제적으로 깨진 유럽이 군사적 연합을 이전 수준으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더글러스 팔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 부원장은 “미국은 브렉시트로 유럽 권역에서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비용과 시간을 써야 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플로리다 주 올랜도 테러 사건으로 미국의 골칫거리임을 재확인시킨 ‘이슬람국가(IS)’ 등 과격 테러 세력과의 전쟁 수행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2014년 IS 격퇴전을 시작하면서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우방들이 대거 참여하는 국제연합군을 내세웠다.

미국이 브렉시트가 몰고 올 국내 파장을 대처하는 데도 허덕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브렉시트 열풍과 닮아있는 만큼 당장 11월 대선에서 이런 흐름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게 발등의 불이다. 그는 24일 시애틀에서 열린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 후원회에서 트럼프를 겨냥해 “사기꾼들과 증오, 편견, 허튼소리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고 비난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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