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43년 만에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신흥국 금융시장이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당장 시장의 돈이 엔화, 달러화, 금, 국채 등 안전자산에 쏠리기 시작하면서 신흥국 통화와 주식 등 위험자산은 폭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이 둔화되면서 수출의존도가 컸던 중국 등 신흥국 경제가 타격을 받았는데 이젠 브렉시트까지 터졌다”며 “신흥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이 국가들에서 외국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는 등 금융시장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영국의 마이웨이에 된서리 맞은 신흥국
영국의 EU 잔류를 점치다가 브렉시트를 맞닥뜨린 금융시장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브렉시트와 다른 나라의 EU 도미노 탈퇴 가능성 등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되자 시장의 돈은 안전자산의 우산 밑으로 몰려갔다. 24일(현지 시간) 대표적 안전자산인 엔화가치는 2013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국제금값은 24일 4.7% 급등해 2014년 7월 이후 최고치로 올랐고 일본과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머니 무브’에 신흥국 증시와 통화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러시아(―3.04%) 브라질(―2.82) 남아프리카공화국(―3.56%) 그리스(―13.42%) 헝가리(―4.45%) 등 대다수 신흥국 증시가 직격탄을 맞았다. 헝가리 포린트화, 멕시코 페소화가 3% 이상의 하락세를 보이는 등 통화가치도 추락했다.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신흥국을 위주로 상승했다. 브라질은 347bp(1bp는 0.01%포인트)로 25bp가 올랐고 러시아는 260bp로 23bp 상승했다. 인도네시아(18bp) 말레이시아(15bp) 중국(10bp) 한국(6.5bp)의 부도 가능성도 일제히 높아졌다.
브렉시트의 파장이 확산될 경우 신흥국의 충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공산이 크다. 한국 증시에서도 외국인 주식투자액의 8.4%(36조 원 규모)인 영국계 자금의 이탈 가능성이 ‘태풍의 눈’으로 꼽힌다.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유럽과 교역량이 많은 중국이 이번 사태로 타격을 입으면 중국 의존도가 큰 브라질 등 자원부국 경제가 잇달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브렉시트의 충격에 유가가 꺾인 것도 신흥국 경제에는 악재다. 24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4.93% 내린 배럴당 47.64달러로 주저앉았다. 올 상반기(1∼6월) 국제유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숨통이 트였던 원자재 수출 신흥국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운 셈이다.
○ 글로벌 금융위기 재연되나
시장에서는 브렉시트의 여파가 장기화하며 또다시 금융위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헤지펀드계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25일 기고전문 웹사이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올린 글에서 “많은 사람이 두려워했던 파국적 시나리오가 현실화했다”면서 “브렉시트 혼란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피해는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투표 결과보다는 도대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이 문제”라며 “이 같은 불확실성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4일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조치가 유럽의 분열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브렉시트 결정 이후 덴마크를 비롯해 네덜란드, 체코,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은 프랑스의 EU 탈퇴(프렉시트)를 촉구하고 나섰고, 네덜란드 극우정당인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는 “네덜란드의 EU 탈퇴, 즉 넥시트(NExit)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EU의 보호무역주의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신흥국 금융시장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세계 교역량 감소 등으로 일부 신흥국에는 금융 시스템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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