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임희윤]브릿팝과 브렉시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9일 03시 00분


임희윤 문화부 기자
임희윤 문화부 기자
영국의 조사업체 한 곳이 브렉시트에 즈음해 남들과 다른 설문을 했다.

유럽연합(EU) 잔류와 탈퇴 중 지지하는 바를 묻는 질문 다음에 바로 이런 문항을 배치한 것이다. ‘(영국 밴드) 블러와 오아시스 중 어떤 팀을 더 선호하는가?’ 결과는 놀라웠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이들 중 3분의 2 이상(68%)이 오아시스의 팬을 자처했다. 잔류를 희망한 이들 중 과반(58%)은 블러가 낫다고 답했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슬레이트닷컴’은 설문 참여자의 음악적 성향과 정치적 성향의 상관관계에 대한 아슬아슬한 가설을 제시했다. 오아시스가 후렴구 멜로디의 힘에 기반을 둔 좀 더 전통적인 로큰롤로 남녀노소의 폭넓은 인기를 끄는 보수성을 상징한다면, 블러는 좀 더 변칙적이고 괴팍한 음악으로 진보성을 대변한다며 이것이 투표 성향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고….

영국 밴드 오아시스와 블러는 1990년대 브릿팝(britpop·영국적 사운드를 강조한 대중음악) 열풍을 이끈 쌍두마차였다. 브릿팝은 당시 영국이 내세운 국가 브랜드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의 정수.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에 열광하던 세계의 젊은이들이 오아시스 편과 블러 편으로 갈라섰다. 영국은 자국의 문화적 자존심을 만방에 떨쳤다. 일순 마치 비틀스와 롤링스톤스의 시대가 재현되는 듯했다. 블러와 오아시스는 더욱이 고맙게도 피 튀기는 경쟁을 했다.

1995년 8월 14일은 영국 록 역사에서 ‘브릿팝 결전일(The Battle of Britpop)’로 불린다. 라이벌인 두 팀이 하필 같은 날짜에 신곡을 내자 영국 언론이 “헤비급 세계 챔피언전”이라고 호들갑을 떤 것이다. 이 대결은 브릿팝이란 브랜드를 알린 절묘한 홍보수단이 됐다.

EU 잔류론과 탈퇴론의 대결은 오아시스와 블러의 ‘윈-윈’ 격돌과 달리 양쪽 모두에 많은 상처를 낸 것 같다. 최근 영국에서는 EU 탈퇴론을 이끌며 그 혜택과 이후의 공약을 홍보하던 정치인들이 잇따라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실수였다”고 발을 빼 눈총을 받는다.

브렉시트 후폭풍은 영국의 음악계에도 불 것 같다. 현지 산업 종사자들은 “관세와 배송비가 올라가 영국 음반 소비와 제작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유럽의 공장과 시장 사정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영국 음악인들의 유럽 공연 장벽 역시 높아질 것이다”와 같은 관측을 내고 있다. 결성 초기, 독일 함부르크에서 독하게 기본기를 다진 뒤 귀국해 세계 제패에 나선 비틀스의 후예가 또 나오기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때 견원지간이던 오아시스와 블러도 브렉시트 사태에 대해서는 최근 한목소리를 냈다. 오아시스 전 기타리스트 노엘 갤러거는 캐나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예 국민투표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정작 전쟁 같은 중요한 일을 벌일 때 정치인들은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블러의 리더 데이먼 알반은 지난 주말 열린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무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마음이 아주 무겁습니다. 민주주의가 우릴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지했던 탓이에요.”
 
임희윤 문화부 기자 imi@donga.com
#브렉시트#오아시스#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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