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 토플러 “한국 미래 먹거리는 정보통신-생명공학” 15년전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일 03시 00분


‘제3의 물결’ 남기고 떠난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고 상상하는 것이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별세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사진)는 뚜렷한 혜안으로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의 영역을 탐구하면서 우리 삶에 많은 메시지를 남겼다. 토플러가 부인 하이디 토플러와 함께 설립한 토플러재단은 지난달 29일 그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으나 구체적인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이름을 날린 토플러의 대표작은 1980년에 출판된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고도 정보화 사회에 대한 토플러만의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이 담긴 시나리오다. 그는 이 책에서 미래사회가 정보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은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됐지만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은 3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제3의 물결’인 정보화혁명은 20∼30년에 진행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제3의 물결에서 처음으로 재택근무, 전자정보화 가정 등의 용어가 등장했다.

토플러의 1991년 저서 ‘권력 이동’에서는 권력의 원천을 폭력(暴力), 부(富), 지식 등 3가지로 규정했다. 폭력을 저품질 권력, 부를 중품질 권력, 지식을 고품질 권력으로 분류한 뒤 21세기 권력 투쟁에서 핵심은 지식으로, 진정한 권력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지식은 소멸되지 않고 약자, 가난한 자도 소유할 수 있어 폭력과 부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토플러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2001년 그는 김대중 대통령 당시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의뢰로 용역을 수행하고, 방한(訪韓)해 ‘위기를 넘어서―21세기 한국의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전달했다. 110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서 토플러는 “한국이 세계 경제의 사다리 상위층에 자리 잡으려면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지식기반 경제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토플러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있다”며 “선택은 저임금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종속국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경쟁력을 확보하고 세계 경제에서 주도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선도국가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단순히 미국 일본 같은 나라들을 모방해선 안 된다”며 지식기반 경제라는 선진 경제에 동참하라고 권고했다.

이후 수차례 방한에서도 그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21세기 창의적 인재 양성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반복해 지적했다. 2006년 12월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을 만나 한국의 성장 동력으로 바이오, 뉴로사이언스(뇌신경), 양자연계연구, 하이퍼 농업, 대체 에너지 등 5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한국 대통령들뿐만 아니라 세계 지도자들의 멘토 역할을 했다. 중국의 개혁파 지도자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는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중국 경제개혁 계획을 구상했고 소련의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경영컨설팅기업 액센추어는 토플러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 경영 구루 피터 드러커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분야 거인으로 평가했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래학자’로 꼽았다. 또한 중국 런민(人民)일보는 ‘현대 중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 50인의 외국인’으로 선정했다.

토플러는 1928년 10월 뉴욕에서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의 자녀로 태어났다. 이후 브루클린에서 자란 그는 1949년 뉴욕대를 졸업한 뒤 중서부 공업지대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대학 졸업자로서 노동직을 선택한 것은 대량생산체제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픈 갈망에서였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토플러는 1998년 한 인터뷰에서 “공장 근무 경험을 통해 공장 근로자들이 사무직 근로자보다 덜 지능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조합 관련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저널리스트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정치, 노동 분야에서 시작해 차츰 경제 분야의 글을 썼다. 1959년부터 1961년까지는 매거진 ‘미래(未來)’의 부편집자로 활동했다. 이후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ICT)에 대한 컨설팅을 하며 정보화 사회에 대한 식견을 넓혔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이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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