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자기 시대의 예언자를 갖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몰락을 내다본 예언자 이사야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이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운명을 피해 보려 노력했으나 그 노력이 오히려 신탁의 예언대로 귀결됐다. 점을 보는 것과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크게 다를 것 같지만 과학의 목적도 결국 예측하는 것이라고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말했다.
▷하루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그래서 앞을 내다보려는 욕구는 더 집요하다. 미래학자는 현대판 델포이 신전의 사제들이다. 앨빈 토플러는 그 신전의 제사장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지식 정보 사회를 미리 내다보고 유전자 복제, 퍼스널컴퓨터(PC)의 파급력, 인터넷 발명, 재택근무 등을 예견했다. 한때는 모든 사람이 토플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의 책 ‘미래 충격’ ‘제3의 물결’ ‘부의 미래’ 등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토플러는 미국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공활(공장 활동)에 나섰다. 그는 5년간 알루미늄 제조 공장의 용접공으로 일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시와 소설을 써보려 했으나 소질이 없었다. 대신 노조가 후원하는 신문사에 자리를 얻어 경영과 기술 분야의 칼럼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나중에 경제전문지 포천에서도 일했다. 이후 IBM 제록스 AT&T에서 컴퓨터의 사회적 파급력 등을 연구하면서 이상한 운명에 의해 미래학자가 됐다.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1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이버 인프라 구축, 지식 기반 경제로의 전환, 생명공학 투자, 교육제도 개혁 등을 권고했다. 2006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는 바이오, 뇌과학, 하이퍼 농업, 대체에너지 등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제시했다. 그를 헨리 키신저나 새뮤얼 헌팅턴처럼 위대한 학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에게는 학자보다는 구루(guru·선생)라는 용어가 더 어울린다. 지혜로웠던 구루가 지난달 27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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