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총선으로 정국 장악력을 높이려던 맬컴 턴불(62) 호주 총리가 의석 과반수 확보에 실패해 오히려 정치적 위기에 빠지게 됐다. 4일 시드니모닝헤럴드 등에 따르면 3일 오전 2시 현재(개표율 78.5%) 집권 자유당-국민당 연합은 하원에서 65곳, 제1야당인 노동당 67곳, 기타 군소정당은 5곳에서 우세를 보였다. 나머지 13곳은 혼전세다.
보수 성향의 자유당-국민당 연합과 진보 성향의 노동당이 하원 150석 중 과반 이상을 확보하려면 각각 11석, 9석 이상을 추가로 얻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느 정당도 10석 안팎을 추가로 확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지 언론들은 여야 모두 과반 확보에 실패해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헝(Hung)’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는 뜻으로 제1당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집권당이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어려운 상황을 빗댄 말이다.
이번 총선은 지지율 80% 이상을 얻었던 턴불 총리가 상하원에서 국정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자초한 것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턴불 총리는 톡톡 튀는 자유주의자로 기후변화, 동성결혼 등 보수 정당에서 꺼리는 이슈에서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당내 강경파에 눌려 진보 이슈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턴불 총리의 지지도는 줄곧 내림세를 탔다. 정치적 돌파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는 용단을 내려 5월 상하원 동시 해산 및 조기총선을 추진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상원에서 노조개혁안이 부결돼 집권당의 상원 의석을 늘려 개혁과제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자유당-국민당 연합은 하원 150석 중 90석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상원에선 76석 중 절반(38석)에도 못 미치는 33석만 확보하고 있었다. 턴불 총리는 개인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상하원에서 집권당 의석을 늘리고 정국주도권을 장악하려한 것이다.
하지만 턴불 총리의 야심 찬 계획은 빗나갔다. 하원에서만 최소 15석 이상을 잃는 등 사실상 패배해 정권을 유지하기조차 어렵게 됐다. 어렵사리 정권을 창출해도 헝 의회가 불가피해 자신이 몰아내려던 무소속, 소수당 의원들과 손 잡아야 한다. 당내에선 턴불 총리가 지난해 ‘당내 쿠데타’로 불리는 당 대표 선거를 통해 총리에서 물러나게 한 보수 강경파의 토니 애벗 전 총리를 다시 내각에 불러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호주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가 상당부분 진행됐음에도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나오지 않자 3일 오전 2시를 기해 잠시 중단했던 우편 및 부재자 투표 등 하원 투표에 대한 개표를 5일 재개한다고 밝혔다. 상원 투표에 대한 개표는 4일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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