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임박한 위협 아니었다… 英참전 잘못”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7일 03시 00분


英, 2003년 이라크戰 보고서 발표

2003년 이라크전은 부정확한 정보와 성급한 판단에 의해 발발했으며 전쟁을 피하기 위한 모든 조치가 취해진 다음 최후의 수단으로 강구된 것이 아니어서 “전적으로 부적절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라 당시 이라크전 참전을 결정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이라크전을 주도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예상된다.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과 수행 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조사를 맡은 존 칠콧 경(77)은 6일 런던 퀸엘리자베스 2세 콘퍼런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3년 영국의 이라크 전쟁 참여는 매우 잘못된 일”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2009년부터 7년간 150명의 증언을 듣고 15만 건의 문서를 분석한 결과를 담은 260만여 단어, 12권짜리 공식 보고서를 제출했다. ‘칠콧 보고서’에는 2003년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에 영국이 참전해 2009년 철군할 때까지 토니 블레어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총체적인 조사 결과가 담겼다.

칠콧 경은 “당시 영국 정부는 군비 축소와 같은 평화로운 방법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전쟁에 참여했다”며 “사담 후세인은 ‘임박한 위협’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칠콧 경은 또 “블레어 전 총리는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해 결함이 있는 정보를 기초로 이라크전 참전을 결정했다”며 내각회의에서 장관들 간 자유로운 토론과 반론 제기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블레어 전 총리가 이라크에 대한 미국 정책 결정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했다”면서 “당시 블레어 총리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에 미온적이었던 프랑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권위를 약화시킨다고 비난했으나 정작 유엔 안보리의 권위를 약화시킨 것은 미국과 영국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의 군사 개입이 “매우 나쁜 길로 빠진 결과 이라크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영국군은 6년간 179명이 전사했고 미군은 4487명이 전사했다. 반면 이라크인은 15만 명이 숨지고 1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칠콧 경은 지적했다.

따라서 이라크전의 법적 정당성은 “만족과 한참 거리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블레어 총리와 내각이 이라크전에 참전하기 위해 의회와 국민에게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오도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블레어 전 총리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당시 자신의 결정을 옹호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예외나 변명 없이 당시 있었던 어떠한 실수에 대해서라도 모든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사담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영국군을 투입하겠다는 나의 결정에 대해 사람들이 찬성하든 반대하든, 나는 이것이 영국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신념을 갖고 결정을 내렸다”고 반박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보고서가 공개된 뒤 “모두가 이번 보고서를 매우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며 당시의 결정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블레어와 같은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이라크전이 국제법상 불법적인 침략전쟁이라 주장했지만 블레어를 전범으로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과거 발언을 다시 꺼내들지는 않았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가드너는 6일 ‘이라크전과 그 결과에 대한 3가지 진실’이라는 칼럼에서 국제 테러 확산과 난민 문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잘못된 이라크전의 연쇄효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은 세계적 안보 위협을 만들어 냈으며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지하드 조직 ‘이슬람국가(IS)’”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서방의 무책임한 시리아 정책으로 시리아 난민이 생겼고 EU는 난민 유입을 억제하면서 터키의 EU 내 무비자 통행을 허용키로 했다”며 “수백만 무슬림의 EU 통행에 대한 우려가 브렉시트로 이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칠콧보고서 어떻게 만들어졌나

150명 인터뷰… 문서 15만건 분석, 부시-블레어 개인 메모도 조사

‘칠콧 보고서’는 2003년 이라크전에 영국이 참전해 2009년 철군할 때까지 토니 블레어 정부의 문제점을 조사한 보고서다. 당시 영국의 참전 명분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개발 중인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이라크전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블레어 정부를 계승한 고든 브라운 정부가 2009년 6월 이에 대한 위원회 구성을 발표했다. 5명의 조사위원은 영국 국왕의 자문기관인 추밀원 위원에서 선정했다. 위원장을 맡은 존 칠콧 경은 북아일랜드부 차관과 내부무 부차관을 거친 행정관료 출신이다. 여기에 학자 출신의 로런스 프리드먼, 외교관 출신의 로더릭 라인 경, 상원의원인 프라샤 남작부인, 역사학자 마틴 길버트 경이 참여했다. 2년여에 걸친 청문회를 통해 150명의 증언을 듣고 15만 건의 문서를 분석했다. 특히 30년 뒤 공개토록 돼있는 정부 비밀문서 접근 문제로 오랜 씨름을 벌인 끝에 2014년 내각의 국무회의 발언 자료와 당시 블레어 총리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간에 오간 개인적 메모까지 살펴볼 수 있게 됐다.

권재현 confetti@donga.com·조은아 기자
#후세인#이라크전#칠콧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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