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수처럼 매복… 경찰에 조준사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9일 03시 00분


美 흑인총격에 경찰관 5명 피살
‘흑인 피살’ 항의 시위대 행진중… 주차타워 위에서 경찰향해 발포
용의자 3명 체포… 1명은 사살, 오바마 “총기 소지로 비극 생겨”

7일(현지 시간) 오후 9시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도심 주도로에서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등의 구호를 외치는 800여 명의 흑인 시위대가 경찰의 잇단 흑인 용의자 사살에 항의하는 평화적인 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시위대가 댈러스 시청에서 불과 800m 떨어진 지점에 이르렀을 무렵 도로 인근 주차타워의 상층부 등 2곳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흑인 시위대들이 소리를 지르며 흩어지는 동안 저격수들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시위 진압 경찰을 조준해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현장엔 경찰 100명이 있었다.

최소 2명 이상의 저격수가 쏜 총알에 경찰 12명이 맞았다. 백인 경찰 등 5명이 숨지고 7명은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일부는 중태다. 2001년 오사마 빈라덴의 9·11테러로 뉴욕 경찰관 23명을 포함해 모두 72명이 사망한 이래 단일 사건으로 미국 법 집행 당국자가 가장 많이 사망한 최악의 사건이었다.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 2명도 크게 다쳤다.

총격전 이후 범인들은 주차타워 등에 몸을 숨기고 경찰과 대치하다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수상한 가방을 가지고 검은색 벤츠 차량을 타고 도주하던 용의자 2명을 10km나 추격해 붙잡았다.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로 추정되는 여성 한 명도 체포했다. 끝까지 대치했던 한 명은 사건 발생 6시간 만인 8일 오전 3시 경찰의 로봇폭발물로 사살됐다.

마이크 롤링스 댈러스 시장은 “이것은 테러다. (이런 범행은) 테러리스트나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데이비드 브라운 댈러스 경찰서장은 “숨진 용의자는 최근 (백인) 경찰의 흑인 사살을 접하고 크게 놀랐다. 그래서 백인을 죽이길 원했고 특히 경찰을 노렸다. 또 어떤 조직과도 무관한 자신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4명 이외에 다른 용의자가 더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백인 경찰들의 흑인에 대한 과잉 진압에 맞선 보복성 공격이지만 전례 없이 의도적이고 조직적이었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사건 현장에 있던 시민 칼로스 해리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총격이) 매우 전략적이었다. (조준 사격하듯) 한 발 쏘고 멈추고 한 발 쏘고 멈췄다”고 말했다. CNN은 시민들이 사건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내보내며 “저격수들이 매복하듯(ambush) 숨어서 총격을 했다”고 전했다. 한 시민은 “범인들이 ‘오늘이 경찰들에겐 제삿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에 전했다.

사망한 경찰들은 5, 6일 루이지애나, 미네소타에서 잇달아 발생한 백인 경찰들의 흑인 총격 사망 사건에 반발해 진행되던 흑인 시위대 옆에 배치돼 있었다. 6일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인근에서 흑인 남성 필랜도 캐스틸(32·교육청 급식담당관)이 교통경찰의 단속 과정에서 총격으로 숨졌다. 5일에는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지에서 CD를 팔던 흑인 남성 앨턴 스털링이 경찰에게 제압되던 중 총에 맞아 사망했다. 두 사건 모두 휴대전화로 촬영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흑인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는 상황이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댈러스 총격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강력한 무기로 무장할 때 사람들은 보다 치명적으로 공격한다. 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다. 앞으로 이런 현실을 더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김수연 기자
#댈러스#경찰관#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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